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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하늘을 나는 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날개폭이 최대 3.7m에 이르는 알바트로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새다. 그런데도 번식기를 빼곤 육지를 밟지 않는다. 물고기와 크릴, 오징어를 찾아 망망대해에서 몇 달을 보낸다. 비결은 날갯짓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다. 상승기류를 타고 날다가 바람이 약해지면 수면에 바짝 붙어 다음 상승기류를 기다린다. 수면 위는 공기 밀도가 높아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비행이 수월하다. 이른바 ‘지면 효과’다.

인간이 만든 비행기도 이 영향을 받는다. 1920년대 조종사들은 이륙, 혹은 착륙 때 비행기가 더 민첩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 수에르는 이를 바탕으로 “굴곡이 많은 땅에서는 위험하지만 바다처럼 평평한 곳에선 지면 효과를 이용하는 비행기가 유용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수면에 바짝 붙어 비행기처럼 나는 배라는 아이디어가 태어난 것이다.

이를 현실로 만든 건 1960년대 소련이다. 배보다 빠르고 비행기보다 경제적인 군용 수송수단을 만든다는 목표였다. 이를 위해 길이 92m, 무게 550t에 이르는 시제품을 카스피해에서 실험했다. 이 제품은 고도 20m에서 최고 시속 740㎞로 날았다. 이를 정찰위성으로 촬영한 미군은 날개 꺾인 비행기 모양인 이 물건의 정체를 몰라 ‘카스피해의 괴물’로 불렀다. 소련 해군은 125t짜리 A-90을 79년 배치해 92년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위그선은 크게 히트하진 못했다. 배도, 비행기도 아닌 어정쩡함 때문이었다. 속도는 비행기보다 느리고, 비용은 배보다 비쌌다. 기존의 선박도 호버크래프트, 수중익선으로 발전하며 위그선의 경제성을 위협했다. 위그선이 주로 레저나 구조 용도로만 쓰여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달 15일 싱가포르에서 위그선이 처음 정식 상업용 선박으로 등록됐다. 독일제 8인승 위그선이 승객과 화물을 인근 섬으로 수송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바다의 날 행사에서 공개된 국산 위그선에 문재인 대통령이 탑승해 화제를 모았다. 그 제작사가 어제 울릉도와 포항·부산을 오가는 정기노선용으로 20대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경제성이라는 오랜 숙제를 뛰어넘어 위그선이 계속 바다를 날아다닐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