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선거전야 -폭력으로 판 깨지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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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정치폭력이 한층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민정당 노태우후보의 군산유세는 폭력으로 얼룩져 경호원·기자등 20여명이 다쳤으며, 전주유세는 아예 무산되고 말았다.
16년만의 직선제 대통령선거가 아무런 소란이나 잡음없이 치러지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다. 오랜 정치적 민주주의의 경험을 쌓은 선진국에서 조차 폭력사태는 흔히 일어나고 있다.그러기에 우리는 그동안 여기저기 유세장에서 일어난 난동이나 유세방해를 선거전의 과열에 따른 불상사쯤으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 군산과 전주에서 일어난 폭력에 의한 유세방해는 이러다가 선거는·무사히 치르게될 것인지, 선거후 어떤 후유증을 불러 일으킬 것인지는 말할것도 없고 우리가 과연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구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마저 심각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번 선거가 우리국민이 민주주의로 도약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또한번 중심과 안정을 잃고 일대 혼란에 휩싸이느냐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선거의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거듭 거듭 강조해온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위에 여야합의로 새 헌법을 만들고 그에 따라 선거를 치르게된 것은 어느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뽑자는 것이 아니고 이땅에도 민주정치의 뿌리를 내리자는데 대의가 있었던게 아니던가.
작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폭력이 단순한 지역감정의 폭발이란측면보다는 20여년을 두고 응어리진 욕구불만의 표현이란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일방적으로 억눌러온 「원」과 「한」이 선거전을 통해 분출되고 있다는 풀이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함이 쌓이고 쌓였다고해도 그것이 폭력이란 형태로 분출되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려는 것은 그동안의 모든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고 보다 큰 테두리에서 국민적 동질성을 정립하여 국민적 화합을 다지고 성취하자는 데 있지 선거를 「한풀이마당」으로 삼자는 것은 아니다.
전주·군산에서 일어난 폭력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일 뿐 아니라 한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더우기 각 정파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막바지 선거전의 과열로 감정이 날카로와질대로 날카로와진 지금과 같은 미묘한 시점에서 이처럼 폭력이 난무한다는 것은 또다른 폭력을 부를 위험성이 매우 큰 것이다.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우리는 일부 지역의 폭력사태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만약에 정치폭력이 두려워서 자유 선거를 부인한다면 우리에게 무슨 선택의 길이 있는가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제 투표일까지는 불과 닷새도 남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해서 그게 역사의 대세를 뒤집어 놓을수는 없다. 그럴수록 유권자들은 평상심을 되찾아 12·16선거의 의미를 깊이 헤아려 누구에게 깨끗한 한표를 던질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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