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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투어는 나의 놀이터 … 50대 아우 휘어잡는 60세 랑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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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베른하르트 랑거. [AP=연합뉴스]

베른하르트 랑거. [AP=연합뉴스]

50대들의 무대에서 60세가 1등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시니어오픈 우승, 메이저 10승 기록 #실수 없고 젊을 때보다 샷거리 늘어 #투어 갓 진입한 50대 제치고 독주

베른하르트 랑거(60·독일·사진)가 30일 영국 웨일스의 로열 포스콜 골프장에서 끝난 시니어 오픈에서 최종합계 4언더파로 우승했다. 랑거는 이로써 자신의 챔피언스 투어(시니어 투어) 200번째 대회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었던 메이저 대회 최다승 기록을 10승으로 늘렸다. 랑거는 한 번도 컷탈락을 하지 않았고 33번 우승했다. 2330만 달러(약 261억원)의 상금도 벌었다.

챔피언스 투어는 만 50세가 되어야 출전 자격을 얻는다. 상대적으로 젊은 50대 초반 선수들에게 훨씬 유리하다. 실제로 챔피언스 투어에 막 올라온 선수들이 단기간에 많은 우승과 상금을 가져갔다. 그러나 요즘은 랑거 때문에 쉽지 않다.

랑거는 50대 중반이 지나면서 더 강해졌다. 지난 3년간 상금랭킹 1위였고 올해도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주요 선수들이 대부분 출전하는 메이저대회는 랑거의 놀이터다.

젊은 선수들이 뛰는 정규 투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랑거는 최종 라운드를 선두 조던 스피스(24·미국)에 2타 뒤진 3위로 출발했다. 2009년 톰 왓슨(68)이 60세에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경쟁을 한 적이 있다. 왓슨은 거리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디 오픈에서 했고, 랑거는 샷거리가 상당히 중요한 마스터스에서 했다.

랑거는 근면하다. 최경주(47)처럼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1985년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가 열린 일요일 근처 교회에 갔다가 문이 잠겨 있어 숙소로 돌아와 간절히 기도하고 우승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2차 대전 중 징집돼 독일군으로 복무하다 러시아에 포로로 잡혔다. 시베리아로 가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몇 개월을 숲 속에서 숨어살다 독일로 돌아왔다. 어려운 시절 아버지는 벽돌공으로 일하면서 부업도 해야 했다. 랑거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근면함을 보면서 자랐고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항상 성실히 노력한다”고 말했다.

랑거는 몇 십년간 몸무게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집에서 운동을 열심히 한다. 대회 출전을 위해 집을 떠나면 더 성실히 한다. 대신 부상을 염려해 무리해서 무거운 것을 들지는 않는다. 하루에 두 차례 스트레칭을 한다. 그는 19세 때 군 복무 중 허리를 다쳤다. 그 일을 계기로 이후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써 부상이 거의 없었다.

랑거는 정규 투어에서 활약할 당시 샷 거리가 짧은 축에 들었다. 지금은 거리가 약간 늘었다. 스윙 스피드는 시속 100마일(160㎞) 정도로 빠르지 않지만, 정확한 컨택트와 스핀을 덜 거는 드라이버샷으로 평균 277야드(27위)를 친다. 아이언과 퍼트에서는 실수가 거의 없다. 올해 그의 그린 적중률은 78.3%로 2위, 그린 적중시 평균 퍼트 수는 1.70으로 이 역시 2위다. 평균 타수는 68.18로 1위다.

랑거는 정규 투어에서 퍼트 입스(긴장으로 몸이 굳어 퍼트를 못하는 현상)에 걸려 몇 차례 고생했다. 96년부터 롱 퍼터를 썼다. 2016년 롱 퍼터를 이용한 앵커퍼트(퍼터 끝을 몸에 붙이고 하는 퍼트) 방식이 금지됐다. 이후 아담 스콧, 키건 브래들리 등 앵커 퍼트 방식으로 쳤던 선수들은 성적이 나빠졌다. 그러나 랑거는 건재하다. 일각에선 “랑거가 실제 스윙에서는 퍼터 끝을 몸에 붙인 채 퍼트를 한다”고 비난했다. 랑거는 “한 번도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규칙을 관장하는 미국골프협회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유권해석을 했다. 랑거는 “나이 많은 시니어 골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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