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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스피커가 신조어 공부' vs SKT '핸드백·신발 알아서 코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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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12면

통신사 비밀병기 AI연구소 경쟁 어디까지

서울 서초구 우면동 AI테크센터에서 KT 협력사인 K뱅크 담당자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뱅킹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 AI테크센터에서 KT 협력사인 K뱅크 담당자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뱅킹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다.

AI테크센터 내부에 마련된 협력사 사무실 전경. [사진 KT]

AI테크센터 내부에 마련된 협력사 사무실 전경. [사진 KT]

지난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우면동 KT융합기술원 2층 인공지능(AI)테크센터.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다음에야 입장할 수 있는 컴퓨터실 내부는 서늘했다. 대형 컴퓨터 수십 대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딥러닝 등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고 있는 컴퓨터는 성인 키 정도의 대형 서류함 5개를 이어 붙인 것과 비슷했다. 초록색 불빛이 연신 깜빡였다. 데이터가 전송되고 있다는 뜻이다.

KT, 개방 전략으로 AI 생태계 확장 #30대 상무 영입 SKT는 비밀주의 #인터넷 전화 가능한 AI 스피커 등장 #AI 주도권 놓고 통신사·포털 경쟁도

대형 컴퓨터는 올해 1월 출시돼 10만 대가 팔린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의 두뇌다. 박성준 KT 선임연구원은 “새로 만들어지는 신조어에 대한 음성 인식 작업이 이곳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같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되면 인공지능이 신조어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사투리, 사용자 연령에 따른 말 빠르기 등 다양한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특정 단어를 학습한다. 학습이 끝나면 각 가정에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로 관련 데이터가 뿌려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내 통신사들이 AI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이유로 통신사 AI 연구소는 비밀병기로 꼽힌다. 지난 6일 문을 연 AI테크센터 역시 KT 핵심 시설로 분류된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하다. 외부인은 직원을 대동하지 않고선 출입할 수 없다. 27일 방문에선 휴대전화 카메라에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나서야 연구소에 입장할 수 있었다. 노트북과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를 반입할 경우에는 일련 번호를 제출하고 사전 승인을 얻어야 한다.

서울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T브레인팀 사무실 풍경. 입식 책상이 인상적이다(왼쪽 사진). T브레인팀은 최근 비슷한 패턴의 이미지를 만드는 인공지능을 내놨다. [사진 SK텔레콤]

서울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T브레인팀 사무실 풍경. 입식 책상이 인상적이다(왼쪽 사진). T브레인팀은 최근 비슷한 패턴의 이미지를 만드는 인공지능을 내놨다. [사진 SK텔레콤]

SK텔레콤도 올해 2월 AI 연구를 전담하는 T브레인팀을 신설했다. 미국 MIT 수학과 석사 출신 김지원(32) 상무가 T브레인팀 책임자다. SK텔레콤 최연소 임원인 김 상무는 삼성전자 전문연구원으로 일하며 국내 AI 포럼인 AI코리아를 이끌기도 했다. T브레인 활동은 SK텔레콤 내부에서도 베일에 싸여 있다. 회사 허가 없이는 언론 등 외부 접촉이 불가능하다. SK텔레콤 직원도 T브레인 사무실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다고 한다. 서울 중구 을지로 SKT타워에 차려진 사무실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구글과 비슷하다. 부서를 나누는 파티션은 없고 서서 일하는 책상이 놓여 있다. 출퇴근시간은 팀원 자율에 맡긴다. 사무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수면 캡슐이 인상적이다.

20~30대 석·박사급 20여 명이 T브레인팀에 소속돼 AI 연구를 맡고 있다. T브레인팀은 지난 5월 디스코간(DiscoGAN)이란 인공지능을 내놨다. 디스코간은 디스커버(discover)와 인공신경망의 한 종류인 GAN을 합친 합성어다. 연구 결과는 논문 초고 온라인 등록 홈페이지 아카이브(ArXiv.org)에 공개했다. 김 상무는 페이스북을 통해 “핸드백 이미지를 넣으면 비슷한 스타일의 신발 이미지로 바꿔 주고 여성 얼굴 이미지를 입력하면 비슷한 느낌의 남성 이미지로 바꿔 주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디스코간은 옷이나 신발을 사용자에게 제안해 주는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이 올해 4월 선보인 스타일 비서 에코 룩은 이런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AI 분야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특정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양대 통신사의 AI 전략은 정반대다. 철저한 비밀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SK텔레콤과 달리 KT는 AI 소프트웨어 개방 전략을 택했다. KT는 AI테크센터 개소와 함께 제휴사들에 인공지능 스피커 기가지니의 소프트웨어 개발도구를 공개했다. 김진한 KT AI테크센터장은 “현재 40여 개 협력사와 손잡고 기가지니 맞춤형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원격교육 등 기가지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가 추가될 전망이다”며 “금융 등 통신사와 관계없었던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AI 생태계를 넓혀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연말 AI서비스사업부를 신설한 LG유플러스는 올해 연말 인공지능 스피커를 내놓을 예정이다.

AI 기술 확산에 따라 통신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AI가 통신과 IT 업계를 가르던 장벽을 깨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마존이 발표한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다. 아마존은 올해 5월 에코에 전화 기능을 추가했다. 인공지능 스피커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스피커 간 무료 통화가 가능하다. 정태경 서울여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통신시장이 음성과 데이터를 더 빠르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AI 등장으로 새로운 서비스 위주로 시장이 개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사와 대형 포털 업체를 비롯한 IT 기업 간 경쟁도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글은 한국어를 지원하는 인공지능 비서를 올해 연말 국내에 내놓을 예정이다. 네이버는 지난 6월 AI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을 인수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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