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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는 고국의 선거|"생사결단"뒤가 걱정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통령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놀랍고 적정스런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비교적 단기간의 개헌작업을 통해 새로 바꾸어 만든 법과 규정이기 때문에 경험도 전통도 없는 탓인지 몰라도 반칙 투성이의 과당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더욱 걱정스런 것은 이선거가 앞으로 1주일 이내에 끝났을 때 일어날 예기할 수 없는 불투명한 사태다.
선거제도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런 정치현상을 후보와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위험정도에 관한 체계 (risk system)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체계는「고도로 위험한 것」 (high risk)과 「위험도가 낮은 것」(low risk)의 두 가지로 예시된다.
즉 후보나 후보를 지지하는 운동원들이 선거에 실패할 때엔 패가 망신할 뿐 아니라 아주 심한 경우에는 신변에 위험까지 겪어야 하는 경우가 고도로 위험한 체계고, 이와 반대로 선거에 진 다음에도 정상적으로 선거전에 하고 있던일로 돌아가 다음 기회를 보든지, 또는 아주 잊어버릴 수 있는 경우는 위험도가 낮은 체계다. 후자의 경우 선거가 네가 없어지지 않으면 내가 살수 없다는 결사의 결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정치발전 과정에 있어서 민주주의 경험이 많은 나라에서는 후자의 페어플레이 선거풍토를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도 하루속히 선거의 승패가 사생결판의 이전투구가 아닌 게임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위험도가 낮은 선거 경합의 풍토조성을 위해서는 후보나 운동원들의 대부분이 변호사·의사·회계사등과 같이 전문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정치운동 아니고도 따로 할 일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정치 이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는 이른바 「정치꾼」의 수가 적어야 한다는 전제가 가장 중요한 변수다.
이 제도를 이룩할 수 있는 두번째의 변수는 선거결과에 따라 논공행상으로 배부되는 엽관 정치(spoil system) 의 정도가 제도적으로 크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째 변수는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변수로서 선거결과에 따르는 경제적 이해관계의 변동폭이 한정적이어야 하며, 끝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명된 민도를 보여주는 게임의 정신을 들 수 있다. 정치경쟁에서도 페어 플레이의 스포츠맨십을 찾아 볼 수 있는 여유의 변수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변수는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영미제도에서도 아직 만족할 만큼 정착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더욱이 반세기 미만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한꺼번에 크게 기대하기는 몹시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들이나 운동원들이 정치운동 이외에는 다른 일을 할수 없는 일부의 정치운동자 전문화 현상이 없지 않고, 선거에서 사생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 절대주의」기미도 여전하여 선거 과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더욱 소름이 끼치는 것은 정치 변동기마다 전문적 행정지식이나 충분한 국정 운영의 실무경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복잡하게 전문화된 근대국가의 행정기능에 자리바꿈으로 대거 투입되었던 터무니없는 행정의 비전문화가 되풀이되고, 엄청나게 조달된 선거자금의 반대급부로 이러한 자리들이 메워지는 「신판 금전정치」의 재현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실이다.
이에 못지 않게 대권주자들이 다투어 남발하는 공약홍수를 보고 우리는 또다른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1대를 분해하여 그 부품 값으로 계산하면 자동차 1대값의 몇배가 된다고 한다. 터무니없이 남발하는 각 후보들의 선거공약·정강정책·흑색선전·감정 폭력등 모두 계산해 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될 것만 같다. 당선되면 그때 가서 볼것이고 당선되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는 무책임한 인상을 버릴 수가 없다.
선거 유권자, 그리고 여론의 매체로서 언론기관이 이번 선거를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분석할 때 우리가 고도위험체계에서 저도위험체계로 옮겨가는 계기를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경제, 사회·문화등 각 부문에서 짧은 기간에 많은 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가 정치면에 있어서도 뛰어난 우리 국민의 역량을 발휘하여 개발도상국의 정치근대화에 있어서도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선거를 통해 보여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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