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유세장을 돌아보고|한표의 "몸살"…민주화 어디쯤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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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들게 싸우고 있는 사람은 78만명 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대학 입시생과 대통령후보로 나온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유세장으로 갔다. 그러나 막상 유세장에 도착해보니 고생하고 있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어떤 특정후보가 좋아서든, 아니면 그저 구경하기 위해서든, 또는 내가 뽑아야할 사람이 누구인가 알기 위해서든 또는 내가 뽑아야할 사람이 누구인가 알기 위해서든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겨울 바람과 선거바람 사이에 휘말려 쓰러지지 않기 의해 애쓰고 있구나 싶어졌다.
「어느 후보의 인천유세를 보기 위해 주안 역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내가 「시청 앞 광장」 이라고 행선지를 밝히자마자 운전사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혼잣말처럼 말을 흘렸다. 『흥, 일당 1만5천원 준다니까 요새는 아줌마들이 더 설쳐』
그 운전사는 다분히 고의적으로 시청 앞을 훨씬 지나서야 차를 세웠고, 덕분에 나는 전세버스에서 내린 동원인원의 행렬에 끼여 15분은 족히 걸었다.
손에 손에 태극기와 당기를 든 사람들의 행렬은 국민학교 운동회를 연상시켰으나 막상 유세장에 도착 해보니 시골장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저기 작은어머니도 오셨네』『고모부도 올 줄 알고 찾아 다녔어요』그렇게 서로 안부인사를 나누는 소리 사이로 연단에서 들리는 가수의 노랫소리. 게다가 여기저기 판을 벌인 코피장수, 라면장수, 떡볶이·오뎅장수.
연단 위의 찬조연설자는 갑자기 다른 당의 후보들에 대한 듣기에도 낯뜨거운 비방들을 부르짖었지만 아무도 별로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다.
곧바로 다른 사람이 후보의 지난 과거를 슬픈 목소리 읊기 시작했는데「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내게 버스안에서 가끔 듣는 걸인 소년의 목소리와 똑같이 들렸다. 소년이 동전 한 잎을 구걸하듯 그들도 표 한장을 구걸하는 셈일까? 연단을 둘러싸고 있는 대학생 동원단체와 아무때나 장구나 꽹과리를 두드려데는 각 동네 노인정 농악대 연단의 신호에 맞춰 응원 연습하듯 태극기와 당기를 열심히 흔드는 사람들, 손과는 달리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들. 차라리 얼굴도 손과 같이 열광적이었다면 덜 참담한 기분이 이었을 것 같았다. 조각난 태극기와 쓰레기더미 위에 서서 이 동원된 군중의 머리수가 뜻하는 것이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며 모두에게 공평한 한표의 깊은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인천시내의 버스가 그 날은 모두 유리창에 「시청 앞 경유」라는 별지의 친절한 안내표지를 붙였다는 걸 알았으며, 골목골목에 놓인 동원차량의 수효를 센다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다음날 서울에서 열린 다른 후보의 유세장에서는 그 머리수에 대해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유난히 매운 날씨에 대항하듯 모여든 사람들의 열기 또한 유난한 것이었는데 후보자를 알아보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지지도를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인파를 보면서 나는 또 그보다 훨씬 많을, 유세장에 나오지 않는 유권자의 머리 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세의 본래 목적이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보다 쉽고 가깝게 호소하는데 있고, 또 유세를 들으려 모이는 목적이 후보자의 됨됨이를 보다 정확하게 보고 알자는데 있는 것이라면 요즈음 우리의 유세장은 무엇인가 어긋 난데가 있다.
선택의 장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유세장의 머리수를 비교해 저마다 서로의 지지도를 자랑하는 것이나 당선의 희망에 들뜨는 것은 어쩌면 허황된 환상이 아닐까.
마치 과중한 숙제를 맡기듯이 하루에 5시간씩 방영해준 관훈클럽 토론회를 보고난 이후 내게는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거북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다. 유세장에서도 그것은 거듭되었다. 한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대통령후보들이, 그것도 국민에게 항복하고 국민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겠다고 입만 열면 외는 사람들이,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을 「나」 라고 부르는 것이다.
설사 대통령후보가 아니더라도 대중앞에 서면 자신을 「저」 라고 낮추어 불러야 하는 것쯤은 한국의 어법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점이다. 그 점이 바로 우리말이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대통령이 「나, 이승만은…」 하고 시작하던 그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어법을 시작으로 해서 「본인은…」 하는 거북한 소리도 귀에 익을 만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대통령 주자들이 한결같이 민주화를 하겠다고 부르짖는 1987년이다. 그런데도「나×××이…」 「이 사람×××가…」 하는 이상한 말들이 판을 치고 있다.
「나」 도 거슬리는 판에 자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상스럽다 못해 우습기까지 하다. 이름은 자기가 부르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다. 남이 부르라고 지어놓은 것이다. 우리말조차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우리의 대표로 믿고 맡길 것인가.
선택의 날이 코앞에 와있다. 저마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한표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유세장의 분위기가 어떠하건 이 모처럼 갖게 된 한 표의 권리가 소중한 건 후보들에게나 유권자에게나 마찬가지다.
선거분위기가 타락했건, 과열했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현실이다. 정치가 우리의 현실을 앞지를 수는 없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타는 목마름으로」 우리가 부르는 민주화는 어디쯤에서 우리의 현실과 만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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