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농민집회 참가 차량 차단은 집회ㆍ시위 자유 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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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투쟁단을 꾸린 농민들이 지난해 11월 25일 오후 경기 안성 톨게이트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쌀값보장을 촉구하며 트랙터 및 트럭을 몰고 상경하다 톨게이트 진입이 막히자 트럭에 실린 쌀겨 짐을 내려놓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봉준투쟁단을 꾸린 농민들이 지난해 11월 25일 오후 경기 안성 톨게이트 인근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쌀값보장을 촉구하며 트랙터 및 트럭을 몰고 상경하다 톨게이트 진입이 막히자 트럭에 실린 쌀겨 짐을 내려놓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해 10월과 11월 경찰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들의 ‘트랙터 상경’을 제지한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집회ㆍ시위 자유를 침해했다.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며 서울경찰청과 경기남부경찰청에 기관 경고했다. 인권위는 ^인권친화적인 집회 시위 대응 매뉴얼 개발 ^경찰관을 대상으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인권교육 실시 ^집회 주최 측과의 긴밀한 협의 체계 마련 등을 권고했다. 앞서 전농은 경찰의 ‘상경 저지’로 자신들의 집회ㆍ시위의 자유가 침해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전농은 지난해 10월 5일과 11월 25일, 70~130여 대의 화물차량을 몰고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서울로 이동하는 길목인 안성 톨게이트와 양재나들목, 한남대교 남단 등에서 이들을 제지했다. 화물차량에 실려 있던 벼를 담은 자루, 볏짚, 깃발 등이 문제가 됐다. 미신고 집회용품이라는 설명이었다. 다수의 차량이 줄지어 이동한 탓에 교통의 혼란이 우려된다는 이유도 들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러한 조치가 헌법에 규정된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미신고 물품에 대해선 사후적으로 집회 주최자를 처벌하면 되는데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집회 신고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지 허가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고서에 기재돼있지 않은 물품을 소지ㆍ반입했다는 이유로 이동을 제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전농의 ‘트랙터 상경’이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경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열을 지어 운행한 것이 아니라 화물차량이라 상대적으로 저속 운행하다가 자연스럽게 생긴 일”이라며 “운전자의 의무를 위반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주는 ‘공동 위험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인권위는 또 “강하게 단속하면 법질서가 이뤄진다는 시각은 집회ㆍ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고 시위 참가자와 경찰 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며 “경찰의 집회 대응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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