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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소비자에 책임 넘기며 논란 피하려는 네이버…댓글의 정치적 악용 등 부작용 낳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인 장현욱(37·가명) 씨는 얼마 전 네이버에서 뉴스를 보다가 문재인 정부의 인사 정책을 비판하는 댓글을 남겼다. '사전 검증을 철저히 해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자'는 원론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댓글은 한 시간도 안돼 댓글 창에서 사라졌다. 그가 쓴 글 대신 ‘사용자의 요청으로 접힌 댓글입니다’라는 문구만 내걸렸다. 장씨는 “욕설도 인신공격도 안 했는데 댓글이 사라져 황당했다”고 말했다.
거꾸로 새 정부의 인선(人選)을 옹호했다가 댓글이 접힌 뉴스 이용자들도 있었다.

사용자들의 '댓글 접기' 요청, 일정 수준 넘으면 #댓글 내용 안 보이고 "접힌 댓글입니다"만 보여 #다수에 반하는 정치적 견해, 표현할 길 봉쇄돼 #"네이버, 댓글 관리 문제되자 고객 뒤로 숨어"

네이버가 지난달 22일 도입한 '사용자와 함께 만드는 댓글 문화 정책'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네이버는 정책 도입 이유로 '건전한 온라인 소통 환경 조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특정 정파에 악용되면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주장이 그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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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접기 요청’ 기능의 원리는 단순하다. 이용자들은 네이버에 전재된 모든 뉴스 하단에 자유롭게 댓글을 달 수 있다. 접기 요청을 하는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네이버의 알고리즘이 이를 인식한다. 이 때문에 일정 비율 이상의 이용자가 접기 요청한 댓글은 자동으로 접히게 된다. 네이버는 몇 퍼센트의 비율일 때 접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는 그간 불법적인 홍보성 댓글이나 음란성 댓글, 욕설이 담긴 댓글 등을 직접 삭제 처리하면서 관리해왔다. 그러다 '네이버가 네티즌의 의사 표현을 직접 관리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댓글 접기 요청 기능을 도입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댓글을 인위로 삭제하는 게 아니고, 이용자 다수의 선택 때문에 (댓글이) 가려지는 것”이라며 “이용자 ‘선택권’을 강화한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욕설처럼 규정 상 삭제 대상인 글이 아니더라도 다수에게 불쾌감을 주는 댓글이 의외로 많다"며 "이런 경우 포털 측이 아닌 이용자들에게 관리자 역할을 맡김으로써 자정 작용을 강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댓글접기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특정 세력에 의해 댓글 여론을 조작하거나 쏠림 현상을 만들어내는데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의견 표현에 적극적인 집단들이 자신들과 다른 소수 의견을 묵살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에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네이버가 특정기능을 도입해 차단하는 게 정당하냐는 주장도 나온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포털 이용자들은 팩트(사실)만 전달한 뉴스 내용 보다는 거기에 달린 댓글에 가치판단을 구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입장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이슈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며 "포털의 댓글 접기나 공감 비율 순 정렬 같은 기능은 여론의 다양성을 오히려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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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뉴스의 편집권, 뉴스 관리 기능 등이 논란이 되자 이런 댓글접기 기능을 비롯해 다양한 뉴스 관리 개선책을 내놨다. 이들 방안의 공통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인공지능을 통한 뉴스 큐레이션(골라서 보여주는 기능)과 소비자 선택권 강화다. 명분은 있지만 모두 네이버 입장에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방식이다.

네이버가 지난 3월 도입한 ‘에어스(AiRS)'는 인공지능이 이용자에게 맞는 뉴스를 추천해주는 맞춤형 추천 시스템이다. 또 대문 화면에서 네이버뉴스를 선택할지 각 언론사를 선택할지와, 언론사 가운데에는 어떤 매체를 메인 화면에 올려놓을지를 모두 소비자가 고를 수 있게도 했다.

이종혁 교수는 “포털이 뉴스 댓글에 순위를 매기고 각종 서비스를 적용해 관리하겠다는 방향 자체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뉴스의 생산 주체인 각 언론사가 댓글 관리 기능도 맡아야 책임있는 저널리즘 구현이 가능하고 언론과 포털의 상생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낙원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뉴스 편집권이 없는 포털이 언론사처럼 뉴스에 개입하면서 책임은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는 건강한 뉴스 유통 생태계를 기대할 수 없다"며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이 빚는 부작용을 파악해 뉴스 유통 정책에 반영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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