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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힘 뺀다'…국회 개헌특위 '사법부 개혁' 구상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개최된 개헌특위 전체회의.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개최된 개헌특위 전체회의. [연합뉴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소위원회가 마련한 '사법부 개혁 구상' 최종 보고서가 24일 나왔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폐지하고 사법행정권도 일선 법관들에게 위임하자는 등의 헌법 개정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에는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개헌특위 자문위 '개헌' 구상 최종안 제출 #'대법관 14명→24명·사법평의회 신설' #사실상 평생 대법관제…대법원장은 호선 #강제력 없지만 개헌 논의 출발점 될 듯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2소위(위원장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 보고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최종 제출했다. 자문위 보고서는 이행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국회가 논의할 개헌의 나침반이 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황도수 위원장은 “대법원장 임명, 사법부 독립, 법관 임명 등 굵직한 사법부 현안을 개헌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이 갖고 있는 실질적인 대법원장 임명권을 폐지함으로써 법원이 대통령에 예속되는 현상을 배제하고자 했다"며 "사법 권력 또한 제왕적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제에 흔들리고 있어 이를 고려한 민주적 사법제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사법 개혁' 출발점, 사법평의회 신설

24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사법부 개혁 논의를 위해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중앙포토]

24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사법부 개혁 논의를 위해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중앙포토]

보고서에 따르면 자문위가 고심한 사법부 개혁의 출발점은 ‘사법평의회’ 신설이다. 법률로 정한 법관회의에서 선출된 일선 법관들로 사법평의회를 구성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분산시키겠다는 것이다. 평의회는 대법원장이 행사하던 사법행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법관의 임용, 전보, 징계는 물론 법원의 예산 및 사법정책 수립, 소송과 관련한 절차ㆍ내부 규율 규칙 등을 제정한다.

자문위는 평의회를 총 16명의 위원으로 구성하자고 했다. 국회 선출 8인(재적의원 5분의 3이상 찬성)과 대통령 선출 2인, 법관회의 선출 6인 등이다.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국회가 사법부의 행정권한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다. 대법원장에겐 위원 선출권을 주지 않았다. 위원 임기는 6년이며 위원으로 임명된 뒤엔 법관이나 대법관을 겸직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평의회위원장은 위원들 중 호선으로 선출한다.

법조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의회 다수파에 사법부가 휘둘릴 수 있고 민주주의 기본원칙인 삼권분립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전직 법원장은 “법관 인사나 대법관 승진을 위해 판사들이 정치권을 기웃거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관 14명→24명…사법평의회가 직접 선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 상고심 선거공판을 위해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모습.[사진공동취재단]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 상고심 선거공판을 위해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모습.[사진공동취재단]

자문위가 구상한 사법평의회는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도 빼앗아 오도록 했다. 현재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이 때문에 “대법관들이 대법원장에 수직적 관계에 놓이게 되고 독립적 의견을 판결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자문위는 이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해 대법관을 평의회 재적위원 5분의 3이상 찬성으로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최종 임명은 그대로 대통령이 하지만 대법원장의 제청권한을 폐지하는 방식이다.

대법관 구성도 크게 변한다.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인 대법관 수를 24명으로 늘리자고 했다. 이렇게 하면 4명으로 구성되는 현행 재판부가 3개에서 6개로 증가해 늘어나는 상고 사건을 원활히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관의 임기제(6년)도 폐지하고 정년제를 적용해 사실상 ‘평생 대법관제’를 도입하자고도 했다. 자문위는 “대법관 퇴임 이후 변호사 개업 가능성을 축소해 전관예우 비리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관은 45세 이상이면 선임될 수 있어 정년 70세까지 최장 25년까지 재임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종신제’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대법관이 현 정부에서 대거 임명되면 진보 성향 법관이 향후 20년 이상 대법원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자문위는 “대법관 숫자가 24인으로 늘어나면 대법관의 연령과 세대가 다양하게 공존돼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른바 ‘재판의 화석화’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 대법관들 '손'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출근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출근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자문위는 대법원장을 대법관 중에서 호선으로 선출할 것을 제안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정권과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사법부가 행정권력에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대법원장 임기를 6년에서 5년으로 줄여 “대법원장의 독주를 막자”고도 했다. 대법원장은 임기가 끝난 뒤 일반 대법관 자리로 내려온다.

국회가 자문위 보고서 내용을 얼마나 개헌 논의에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6월 국회가 마련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했다. 전국법관회의에서도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을 목적으로 한 사법평의회 신설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황도수 위원장은 “개헌을 자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계 등에서 고민하던 사법 개혁의 구상을 모두 담았다. 선택은 국회와 국민의 몫”이라고 말했다.

‘사법 부분’의 개헌을 다룬 개헌특위 자문위 2소위에는 황 위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을 지낸 권오창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52ㆍ사법연수원 18기)와 여운국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50ㆍ23기), 성창익 법무법인 원 변호사(47ㆍ24기) 등 판사 출신 3명이 있다. 법제처 행정법제국장과 법령정보관리원장 등을 지낸 조정찬 숭실대 법대 겸임교수,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참여했다.

윤호진·손국희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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