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용산공원화, 민족·역사·문화 살려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41호 30면

Outlook

이달 초 용산에 있던 미 8군 사령부가 평택기지로 이전했다. 미국명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5.5배에 달해 해외 주둔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크다. 대신에 용산기지 땅은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의 군용지로 수용된 이래 110년이 더 지난 2018년 우리의 품으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의 문화재 반출 승인 #국가공원 조성 자기부정하는 꼴 #우리가 한반도 주인이란 의식 결여 #10년 만에 공원 완성 계획 연연 말고 #중지 모아 진정한 힐링공간 조성을

다만 일본군이 수용했던 용산기지 108만 평 전부가 온전히 돌아오는 건 아니다. 수차례 수정과정을 거치면서 국방부 등 한국 측 시설물과, 한미연합사·드래곤힐호텔 등 미국 측 시설물이 공원화 대상에서 제외된 채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남게 되는 시설물은 일본군 용산기지의 약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더구나 이 시설물 대부분은 기지 남북을 기준으로 중간 지점인 삼각지와 녹사평역으로 이어지는 길의 좌우에 흩어져 있다. 이대로 공원화한다면 공원의 허리 부분은 잘룩한 상태로 될 것이고, 의도치 않게 한반도의 분단을 상징할 것이다.

공원화를 책임지고 있는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용산기지의 이런 변화를 반영한 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추진기획단은 2018년부터 10년 동안 3단계로 나눠 공원화를 추진하겠다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고 여전히 시간표대로 밀어붙일 기세다.

그러면서 용산이란 공간에 자리 잡았던 기지로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적 제언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 추진기획단은 새로운 정권의 정책방향을 살피며 ‘용산공원 라운드 테이블’이란 홍보성 행사를 기획함으로써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기지 내 역사유적이 사라지고 있다. 문화재청이 주한미군의 요청을 받고 12점을 제외한 56점의 문화재를 평택기지로 반출해도 좋다고 승인했다. 이는 용산에 민족성·역사성·문화성이란 기본이념을 충족한 ‘국가공원’을 세우겠다고 공언한 정부 스스로가 자기 주장을 부정한 결정이다.

미군 전몰자 기념비도 평택으로 옮겨 간 역사유물 중 하나다. 한국 정부가 9조원을 들인 기지 이전과 국가공원화 사이에서 한국과 미국은 기념비 등 역사유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우선 기념비는 용산기지로 되돌려야 한다. 용산기지가 식민지와 냉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분단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점은 식민과 냉전을 표상하는 외국군이 주둔한 용산기지, ‘서울 속의 미국’인 용산기지의 역사를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는 듯한 태도다.

물론 기지 내의 문화재 가운데는 미국만 관련된 유적과 유물도 있다. 식민지 시기와 연관된 것도 있다. 하지만 그곳은 한국의 땅이다. 전셋집에 비유하자면 집주인은 한국이고 미국은 세입자일 뿐이다. 이번 문화재 반출 허가는 우리가 한반도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부족함을 스스로 보여 준 결정이다.

그렇다고 기지 내 모든 문화재를 평택기지로 이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다. 주한미군도 자신의 역사를 기억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권리를 인정하는 태도가 민주주의 다양성을 살리는 열린 자세이고, 동맹의 가치를 튼튼하게 하는 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어찌 보면 모순되는 이 지점을 가장 조심하고 경계하면서 공원화를 추진해야 한다. 미국도 진지한 논의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기념비 반환에만 멈추지 말고 용산기지가 갖는 특수한 역사를 반영하는 기억장치를 한국과 미국이 공유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대의 아픈 역사를 보듬고 함께한 기억을 확대하는 게 기본 방향이 될 수 있다. 기지 내에 들어가 직접 측량하고 삽을 뜰 수 없는 현실에서 가장 집중해야 했던 지점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달리 말하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미래를 말해야 기본이념에 충실하며 ‘국가공원’으로서의 위상에 걸맞는지에 대해 중지(衆智)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왜 국립공원이 아니고, 듣도 보지도 못한 개념인 ‘국가공원’이어야 하는지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했어야 한다.

용산공원의 위상과 기본성격에 어울리는 내용의 축적과 사회적 합의. 지금 한국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10년 만에 공원화를 완성하겠다는 마스터플랜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생태공원이라 내세우며 삶의 흔적을 제거해 버리고 토건적 관점에서 접근한 기본계획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용산공원이 진정한 힐링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치며 용산만의 기본이념을 그 공간에 천천히 담아 낼 필요가 있다.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한국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