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해 청와대 참모진에게 물으면 대부분 “분위기 메이커다. 항상 재밌게 말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장 실장은 대화를 할 때 항상 말하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 만담가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뒤 웃었다.
장 실장의 그런 입담은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4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했을 때도 발휘됐다. 야당 대표들에 앞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 실장과 팔짱을 끼고 걸어서 상춘재 앞마당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러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5일 고위 당·정·청 회동 때 추 대표가 팔짱을 끼려 하자 장 실장이 거부했던 모습을 거론했다. 곁에 있던 문 대통령도 “그냥 빼는 게 아니라 한사코 빼는 모습이 (잡혔다)”고 거들었다. 추 대표 역시 “빼는 것처럼이 아니고 (장 실장이) 실제 저를 거부했다”고 했다. 그러자 장 실장은 “아니, 그거는 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받아치면서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다.
장 실장의 재치는 미국에서도 발휘됐다.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장 실장이 영어로 말하자 “오! 와튼스쿨! 똑똑하신 분”이라고 말하면서 회담 분위기가 좋아졌는데, 그런 배경에는 장 실장의 사전 정지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 실장은 전날 환영만찬 때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따로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와튼스쿨(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동문이라고 미리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장 실장이 입담만 좋은 게 아니다. 청와대의 정책 컨트롤타워답게 정책적 영향력도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가 ‘부자 증세’ 논의를 시작한 건 민주당과 청와대의 교감 속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그런 논의를 이끄는 사람은 당연히 장 실장이다.
장 실장은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로서 2014년 9월 펴낸 책『한국 자본주의』에서 소득세에 관해 “상위 1% 소득 계층에 대해서는 누진세율을 더 높여야 한다”고 했고, 법인세에 대해선 “초대기업에 현재의 22%보다 훨씬 더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대표가 지난 20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구간을 신설해 증세를 하자고 제안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장 실장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만든 국정기획자문위에서 부위원장으로도 참여했다. 밑그림을 직접 그렸으니 실행할 때 목소리를 내기도 쉽다.
게다가 재벌개혁 운동을 함께 해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고려대 후배인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친분이 있다. 정치권에선 “최 위원장의 발탁에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추천뿐 아니라 장 실장 라인의 영향도 있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내각의 경제사령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통하지 않고서도 장 실장이 김·최 위원장과 호흡을 맞추기 쉬운 여건인 셈이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