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맞춤형 보육 “폐지” 원격의료 “반대” … 공든 정책 뒤집는 문외한 장관 후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박능후

박능후

“맞춤형 보육 제도를 폐지하겠나?”(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복지위 박능후 청문회 #비전문 분야인데 단정적 입장 표명 #야당 “공부해 잘 안다는 자만심 빼라”

“그런 방향으로 가겠다. 종일반을 기본으로 운영하겠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18~19일 ‘무박 2일’로 진행된 박능후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크게 두 방향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주도하는 도덕성 검증과 여당 의원들이 주로 나선 정책 질의였다. 특히 여당에선 기존에 실시해 오던 보건복지 정책들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박 후보자는 위장전입이나 과태료 체납 의혹 등에 대해선 “송구하다”거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넘어갔다. 하지만 이전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에선 전혀 달랐다. 빈곤·기초생활보장 등을 다뤄온 사회복지학자인 그는 비전문 분야인 보육과 보건의료 분야에까지 “폐지” “반대”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내놓았다.

맞춤형 보육 제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도입된 맞춤형 보육은 부모의 취업 여부에 따라 0~2세 영아를 ‘종일반’과 ‘맞춤반’으로 나누고 보육료도 차등 지원하는 제도다. 시행 초반엔 어린이집의 반발이 있었지만 아이를 더 오래 맡기는 워킹맘을 배려한다는 취지 속에 나름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자는 ‘폐지’라는 결론부터 덜컥 내놓았다. 전날 국회에 제출한 서면 질의답변서에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다. 그는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의 똑같은 질문에도 “종일반을 기본으로 하는 보육체계로 정비하겠다”고 재차 답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어렵게 마련한 보육 시스템이 1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간 제기된 학부모 선택권 제한 등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의미”라면서도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가 직접 병·의원을 방문하지 않고 영상 기기를 통해 진료를 받는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10년 가까이 의료 취약지를 중심으로 추진해 온 원격의료 사업에 대해 박 후보자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근본적으로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의료 영리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해 온 의료계와 보조를 맞춘 모양새였다.

이처럼 장관 후보자가 ‘비전문’이자 민감한 분야에 설익은 입장을 내놓는 것은 자칫 해당 부처를 뒤흔들 수도 있다. 특히 보건복지 정책은 이익집단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아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친 뒤에야 확정되는 사례가 많다.

맞춤형 보육은 수년간 어린이집 관련 단체를 설득하고 워킹맘·전업주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가면서 합의를 도출해 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하나의 큰 정책을 내놓으려면 최소 몇 년간 엄청난 고민과 의견 조정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단번에 방향을 바꾼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격의료도 법안 통과는 번번이 무산됐지만 의료계와 협의해 가며 꾸준히 확대해왔다. 2014년 9월부턴 의료 취약지의 접근성을 높이고 만성질환자 등에 대한 건강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도서 벽지 등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박 후보자는 지명 당시부터 복지 분야엔 강하지만 보건의료나 인구 문제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날 청문회에서도 의원들의 우려 섞인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를 감안한 듯 청문회 모두발언에선 “복지부 장관이란 중책을 맡겨주시면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을 항상 경청하고, 중요한 정책은 상의해 국민을 위한 정책이 수립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다짐은 한나절 만에 공염불이 됐다.

그러자 보다 못한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이 ‘뼈 있는’ 조언을 건넸다. “후보자가 보건의료에 약하다고 지적하니 ‘많이 공부해서 잘 안다’고 하는데 자만심을 빼야 합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