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소 공동위 소련군 숙소 그대로 … 일본군 막사 위에는 오각별 선명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40호 06면

[르포] 111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용산기지

일본 육군 제20사단 78, 79연대는 용산기지 자리에 주둔했다(위 사진). 지금의 녹사평역에서 1920년대 무렵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막사 한 동에는 1개 대대 병력이 머물렀다. 반환을 앞둔 미군 용산기지 전경(아래 사진). 사진 우측에 전쟁기념관 건물 일부가 보인다. [중앙포토, 사진 용산구청]

일본 육군 제20사단 78, 79연대는 용산기지 자리에 주둔했다(위 사진). 지금의 녹사평역에서 1920년대 무렵 촬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막사 한 동에는 1개 대대 병력이 머물렀다. 반환을 앞둔 미군 용산기지 전경(아래 사진). 사진 우측에 전쟁기념관 건물 일부가 보인다. [중앙포토, 사진 용산구청]

미 8군사령부의 평택 이전으로 시작된 용산기지 이전 사업이 올해 말 완료된다. 이에 따라 외국 군대가 차지하고 있던 용산(龍山)은 111년 만에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중앙SUNDAY는 미 8군사령부가 떠난 용산기지 내부를 취재했다. 지난 14일 둘러본 기지 내부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가 묘하게 얽혀 있는 공간이었다.

인왕산 발원 만초천 원형 보존 #200년 느티나무 군락지도 있어 #일본군 병영건물 130동 밀집 #일제 침략 보여주는 역사문화유산 #전작권 환수 따라 공원 면적 유동적

기지 건설로 1만4111호 강제 이전

1906년 일본군 토지 수용 문건에 포함된 옛 용산 지역 상세 지도. 붉은 선 안이 300만 평으로 계획된 군용지 수용지다. 파란 선은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길이다. [사진 용산구청]

1906년 일본군 토지 수용 문건에 포함된 옛 용산 지역 상세 지도. 붉은 선 안이 300만 평으로 계획된 군용지 수용지다. 파란 선은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길이다. [사진 용산구청]

화강암 문설주에 깊숙이 박힌 철제봉은 녹물을 토해냈다. 한미연합사령부 청사 뒤편에 위치한 문설주는 일본군 보병부대가 연병장으로 드나들던 출입구로 쓰였다. 철문은 잘렸지만 문설주는 그대로 남았다. 용산기지는 1906년 일본군 병참기지가 주둔한 게 그 시작이다. 경부선을 지척에 두고 한강을 끼고 있던 용산은 군대가 주둔하기에 지리적으로 최적의 장소였다. 기지 내부에선 최근 완공되기 시작한 용산역 인근 고층 건물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제는 1908년 4월 대한제국으로부터 용산 일대 땅 390만㎡(약 118만 평)를 사들여 군 사령부를 신설했다. 용산구청이 지난 12일 공개한 한국용산군용수용지명세도(韓國龍山軍用收容地明細圖)엔 구한말 용산 인근의 마을 위치와 규모가 그려져 있다. 일제가 사들인 땅은 용산방(龍山坊)과 후암·이태원 일대 둔지방(屯芝坊)으로 나뉜다. 미 8군 드래곤힐 호텔이 자리 잡고 있는 둔지미 신촌 마을 주민들은 모두 강제로 이주해야 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최근 사료 조사를 통해 둔지미 마을 주민들이 1906년 일본의 토지 수용에 집단으로 반발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구한말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흔적은 기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인석(분묘 앞에 세우는 문관 형상의 석상)과 동자상에 남아 있다. 일본군은 무덤을 파헤쳐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일본에 수용된 가옥은 기와집과 초가집을 합해 1만4111호다. 분묘 12만9469기와 전답 35만5312㎡(약 10만7482평)도 두고 나와야 했다. 기지 내부엔 조선 왕실이 기우제를 지낼 때 쓰던 제단도 보존돼 있지만 이날 돌아보진 못했다.

문설주를 지나 한강의 지천인 만초천을 따라 걷는다. 일제는 연병장을 만들면서 석축을 쌓아 구불구불한 만초천을 곧게 폈다. 인왕산에서 발원하는 만초천은 1967년 복개 공사가 이뤄지면서 도로와 건물 아래로 서울 시내를 관통한다. 현재 만초천의 물길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용산기지다. 미군 관계자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만초천에서 하수도 냄새가 심했는데 최근 공사를 통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만초천 위를 무지개 모양의 홍예교가 가로질렀다.

1 한미연합사 청사 뒤에 있는 화강암 문설주. 2 용산기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석물은 구한말 조선인들이 용산 일대에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1 한미연합사 청사 뒤에 있는 화강암 문설주. 2 용산기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석물은 구한말 조선인들이 용산 일대에 거주했음을 보여준다.

3 1908년 완공된 옛 일본군 병기고 건물. 강기헌 기자, [사진 용산구청]

3 1908년 완공된 옛 일본군 병기고 건물. 강기헌 기자, [사진 용산구청]

김구 암살범 안두희 가둔 위수 감옥

만초천을 따라 1분 정도 걷자 왼쪽으로 노란색 건물이 보였다. 한미합동군사업무단(JUSMAG-K)이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옛 일본군 장교 숙소다. 붉은 벽돌로 올린 2층 건물 전체에 페인트를 칠했지만 건물 뼈대는 튼실해 보였다. 건물 앞에 조성된 원형 정원엔 작은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사무실은 공개할 수 없다는 미군 방침에 따라 내부를 들여다볼 순 없었다. 이 건물은 해방 직후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따라 설치된 미·소공동위원회 소련 대표단이 묵었던 곳이다. 일본군이 버리고 간 장교 숙소를 소련군이 채웠고 이를 미국과 한국이 이어받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군이 지은 막사는 대부분 2층 건물이었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막사 지붕 밑에는 일본군을 상징하는 오각별 문양이 선명하다. 2011년 용산기지 건축물 현장조사를 진행한 김종헌 배재대(건축사) 교수는 “일본군 병영건물 130동이 밀집해 있는 곳은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용산은 일본의 한반도 및 대륙 침략의 실체를 보여주는 세계적인 역사문화유산이다”고 평가했다. 용산기지 내 건물 1245동 가운데 132동이 일제 강점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산기지 메인포스트 북쪽에는 일본군 위수 감옥도 있다. 한국전쟁 때 생긴 총탄 자국이 붉은 벽돌 곳곳에 흩어져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는 범행 후 이 감옥에 수감됐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감옥에서 나와 육군에 복귀했다. 이날 미군 측은 기자에게 용산기지 메인포스트만을 공개했다. 메인포스트를 돌고 되돌아온 한미연합사령부 앞에는 5층 빌딩 높이의 나무가 하늘로 뻗어 있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용산기지 곳곳에는 200년 넘게 자란 느티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두 팔로 감기 힘들 정도로 굵은 느릅나무와 소나무 군락이 밀집해 있어 공원 조성 시 활용가치가 높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이날 보지 못한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에는 한국전쟁 때 폭파된 조선 총독 관저에서 일본군 사령부까지 이어진 지하 터널이 남아 있다. 미군 관계자는 “터널은 콘크리트를 부어 폐쇄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일본군 사령부는 해방 후 미 7사단 사령부로 쓰였다. 1949년 미 군정이 철수하자 한국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일본군 사령부를 청사로 썼다. 사령부 건물을 일·미·한 3국이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 셈이다. 지하 벙커는 육군본부 정보국 사무실 겸 작전상황실로 쓰였다.

1호 국가도시공원 조성 구체적 계획 아직 없어

정부는 미군이 떠난 용산기지를 1호 국가 도시공원으로 만들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되면 그곳에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자연생태공원이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용산기지에 남게 될 한미연합사령부 일부 시설에 대한 한·미 양국 협의가 진행되고 있어 공원 면적은 유동적이다. 문 대통령이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고 있어 결과에 따라 연합사 잔류 시설 면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에 앞서 양국 정부는 2004년 체결한 용산기지 이전협정에 따라 연합사도 평택기지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군이 연합사에 파견된 요원들의 용산기지 잔류를 요청했고, 2014년 안보협의회(SCM)에서 소규모 인력의 연합사 용산기지 잔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연합사 본부 건물(화이트 하우스)과 작전센터 등이 용산에 남는다. 이에 필요한 부지는 반환될 용산기지 면적 243만㎡의 10% 이하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잔류 부지 규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해 초 용산기지를 둘러보고 “미군 잔류부지는 최소화해야 반쪽짜리 공원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큰 틀에서만 공원 조성 계획을 수립한 상태다. 당초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4월 부처별 공모를 통해 용산공원 내 기존 건물을 활용하거나 신축해 경찰박물관 등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시와 환경단체가 반발해 한 발 물러선 상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기지 공원화가 국가 주도로만 진행되고 있어 역사성과 장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부족하다”며 “용산 원주민들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는 역사를 고려해 공원 조성 과정에서 시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