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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면 박해" 난민신청한 이집트 동성애男, 그러나…

중앙일보

입력

동성연애자란 이유로 난민신청을 했던 외국인이 1, 2심의 엇갈린 판결 끝에 결국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집트, 이슬람 율법 따라 '풍기문란' 처벌 엄격 #한국 왔다가 '동성애' 이유로 난민 인정 신청 #1, 2심 불인정-인정 번복되다 대법원 '불인정'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집트 국적의 외국인 A씨(26)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4년 4월 관광비자로 입국해 체류하다가 비자가 만료되기 3일 전인 같은 해 5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A씨가 난민 신청을 한 이유는 자신이 동성애자여서다.

"이집트 돌아가면 처벌" 난민 신청했지만…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진 않지만 ‘이슬람에 반하는 행위’로 보고 풍기문란죄를 적용해 처벌해왔다. A씨는 자기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고향에서 알려지는 바람에 자신의 형이 보수정당 당원들에 의해 납치되는 등 생명과 신체의 위협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세계난민의 날인 6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난민인정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에티오피아 난민들. [연합뉴스]

세계난민의 날인 6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난민인정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에티오피아 난민들. [연합뉴스]

하지만 1심 법원은 A씨가 동성애자임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자신의 형이 납치됐다는 등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난민으로 인정할 만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적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1심을 뒤집고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동성애자에 대한 이집트 사회의 차별적 분위기에 주목했다.

이집트는 2008년 리비아 출신 유학생을 동성애자란 이유로 추방했고, 이집트 법원은 이를 사회악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적법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또 2014년 11월 나일강 선상에서 열린 동성 커플의 결혼식 영상이 SNS로 확산되자 이집트 당국은 이들을 풍기문란죄로 체포해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2심 재판부에 동성애자로서 은밀한 고백을 하기도 했다. 10세 안팎 무렵 자신이 동성애적 성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후 10여 년 동안 몇몇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서도 동성애자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한국인 남성을 만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대법 "진술 신빙성 없다" 파기환송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윤성원 부장)는 “신청인의 진술에 일관성과 설득력이 있고 그 지역의 통상인이 느끼는 공포의 정도에 비추어 진술이 합리적인 경우 난민 인정의 요건인 ‘박해’가 증명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집트에서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면 박해를 받을 위험이 매우 높아 보이고, 그런 우려 때문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외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 그 자체를 박해의 일종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나일강 선상에서 결혼식을 올린 두 남성. 이 영상이 SNS에 퍼진 뒤 이들은 풍기문란 혐의로 체포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집트 방송 화면 캡처]

이집트 나일강 선상에서 결혼식을 올린 두 남성. 이 영상이 SNS에 퍼진 뒤 이들은 풍기문란 혐의로 체포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집트 방송 화면 캡처]

이 판결로 A씨의 바람은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2심 선고 후 9개월 만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에 그의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대법원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통상적인 사회적 비난의 정도를 넘어 생명과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과 중대한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난민협약이 말하는 박해에 해당한다”면서도 “원고(A씨)가 난민면접조사와 법원의 신문에서 했던 진술이 모두 달라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설득력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로 A씨가 난민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작아졌지만 당분간 국내 체류 기간을 늘리는 건 가능해졌다. 2심과 대법원의 재상고심을 거쳐 난민 불인정 결정이 확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난민신청자 1만명 시대 눈앞인데…인정률은 세계 최저

 한국은 난민 인정에 무척 인색한 편에 속한다. 2013년 7월 난민법이 시행된 이후 난민 신청자가 매년 2000여명씩 증가했다. 지난해에 7542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올해에는 1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지난해 1.82%(98명)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난민법 시행 이후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은 약 37%다. 일부에선 불법체류 기간 연장을 목적으로 한 ‘꼼수 신청’ 때문에 허수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난민법에 따라 난민 신청자에게는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국내 체류가 허용되고 월 42만원의 생계비가 지원된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 중 불법체류자는 2800명(37%)에 달했다.

2015년 12월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수속 중인 미얀마 난민들. [중앙포토]

2015년 12월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수속 중인 미얀마 난민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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