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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야밤 과외와 멜라토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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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전두환 정권 때인 1980년대 가난한 대학생들은 ‘몰래 바이트’를 했다. 서슬 퍼런 과외 전면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학비를 벌었다. 시골 출신에게 입주 과외는 오아시스였다. 학생 집에서 가족처럼 지내며 단속을 피했다. 후배도 고1 여고생 집에 들어가 3년을 살았다. 공부를 가르친 것인지 연애를 한 것인지, 후일 그 여학생과 결혼했다. 그는 “주로 밤에 과외를 했다”며 겸연쩍어했다.

요즘에는 입주 과외가 사라졌다지만 야밤 과외는 여전하다. 학생들은 하루 종일 ‘열 받은’ 머리를 또 혹사시킨다. 그러다 보니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도 고생이다. 멜라토닌은 밤낮의 길이, 계절별 일조시간 변화 등을 감지해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호르몬이다. 어르신들은 초저녁에 분비되고 새벽에 멈춰 일찍 자고 일찍 깨는 패턴이 반복된다. 반면 청소년들은 오후 10시 이후부터 왕성하게 나와 아침까지 분비되지만 억지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멜라토닌에 버그가 생겨 수면 부족으로 늘 피곤해하는 이유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들의 건강권과 수면권을 보호하겠다며 의욕을 부린다. 전국 최초로 개인 과외 교습 허용시간을 학원과 똑같이 오후 10시까지로 제한했다. 19일부터는 야밤 과외 단속에도 나선다. 세계 최장 학습량, 최소 수면시간 탓에 청소년 행복지수가 꼴찌인 현실을 감안하면 필요한 일이긴 하다.

의욕만 앞세운다고 될 일일까. 야밤 과외는 입주 과외만큼이나 은밀하다. 수능 ‘족집게’나 내신 ‘필살기’를 내건 야밤 도사들이 새벽까지 암약한다. 접선 장소는 주택이나 오피스텔. 학부모도, 학생도 쉬쉬한다. 교육청은 술래잡기에서 승산이 없을 듯하자 신고 포상금 10만원을 내걸었다. 서울에는 신고된 개인 과외 교습자만 2만1000명이 있다. 자칫 전두환 정부 때처럼 위험수당만 올려 주는 게 아닌지….

알파고의 창시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인공지능(AI)도 잠을 자야 더 많이 학습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인지·실행기능 관련 스위치를 일정시간 끄고 열을 식혀 줘야 똘똘해진다는 거다. 기계도 그럴진대 아이들에게는 왜 멜라토닌 버그를 강요하나. 부모들이 욕심의 스위치를 꺼야 한다. 교육청의 엄포만으론 아이들의 잠이 보장되지 않는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