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 5초 만에 눈물 연기 … "역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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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스타가 출연하기만 하면 시청률이 보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쉬었다 돌아오면 주가는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그건 '아, 옛날이여'다. 명성이 보증수표 역할을 하기는커녕 더욱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시청자의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지난해 최진실.채시라.김혜수.김희애.전도연…등이 이 관문을 거쳤고, 이제 이영애(32) 차례다.

20일 오전 의정부 세트 촬영장. 다음달 15일부터 방송되는 MBC 월.화 사극 '대장금'의 무운을 위해 고사가 진행 중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이영애의 손이 가슴에 모아지더니 눈이 감긴다. 일초, 이초, 삼초…. 돼지입에 천천히 돈 봉투를 물리는 그녀의 표정이 비장하다.

"저로선 오늘이 첫 촬영이에요. 그간 1백m 달리기에 도전한 심경이었어요. 출발선에 서기까지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잘 달려야 할 텐데…."

장금(長今.대(大)는 이름을 높여 부른 말)은 남존여비의 조선사회에서 임금의 주치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 조선조 최고의 여성 전문직이라 부를 만하다. 조선왕조실록엔 그녀에 관한 기록이 20번 나온다.

미천한 신분의 이 의녀(醫女)를 임금 가까이 둬서는 안된다는 중신들의 주청에 중종이 "내 병은 장금이가 가장 잘 안다"며 물리치는 대목이 나오니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허준''상도'를 연출한 이병훈 PD는 '허준'시절 발견한 이 이름을 끝내 50부작으로 되살렸다.

"제 은둔(?)생활을 단번에 깰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일생을 던질 줄 아는…. 이런 여성이 왜 지금까지 묻혀 있었을까. "

이영애로선 2000년 SBS '불꽃'이후 3년 만의 TV 나들이. 정통 사극은 96년 '서궁'이후 두번째다. 영화도 2001년 가을 '봄날은 간다'가 마지막이니 2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서는 셈이다.

그래도 감각은 녹슬지 않은 모양이다. 이날 드라마 타이틀을 찍는 장면에서 단 5초 만에 눈물이 그렁그렁, 이병훈 PD로부터 "역시 이영애야! 좋았어"라는 찬사을 얻어 냈으니.

"전 이제 신인이 아니잖아요. 그동안 준비를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요리요."

장금은 의녀지만 실록에 '보양식에 조예가 깊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드라마 속 장금이 최고의 수라관(궁중요리사)이 됐다가 의녀로 길을 바꾸는 스토리는 여기에 기인한다.

이를 위해 이영애는 종로구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일주일 넘게 하루 6시간씩 음식을 배웠다고 한다. 도마와 칼을 사용하는 법부터 채썰기, 나물손질, 무치기 등 한식 요리의 기본을 익혔다. 임금님이 이른 아침에 드시는 죽상부터 신선로.구절판 등 궁중잔칫상을 차리는 법도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 왔다.

"음식의 색감 하나에도 의미가 있더라고요. 수라상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알 수 있다는 게 거짓이 아니에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 맛보다는 음식을 만드는 손의 움직임에 더 자신있어요."

긴 휴식기 동안 체력을 다지고 여행도 맘껏 다녔다는 이씨. 몸도 마음도 충분히 재충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신인의 자세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이런 그녀를 시청자들은 어떻게 맞아들일까.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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