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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뜨며 재조명 받는 아나키스트 박열의 삶…고향 문경도 방문객 급증

중앙일보

입력

독립투사,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불령선인(不逞鮮人·불량한 조선 사람), 의사(義士)….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독립운동에 매진한 박열(1902~1974)의 호칭은 다양하다. 박열은 일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대역죄로 22년 2개월간 옥고를 치른 풍운아다.

일제 권력 맞섰던 박열과 가네코 #최근 영화 개봉하며 관심 높아져 #'박열의사기념공원' 방문객 늘어 #평일 15~20%, 주말엔 배 가까이

그 많은 별명을 마다하고 그는 자신을 '개새끼'라고 불렀다. 1922년 일본 유학생들이 펴낸 잡지 『조선청년』에 실린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를 통해서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하늘을 보고 짖는/달을 보고 짖는/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뜨거운 것이 쏟아져/내가 목욕을 할 때/나도 그의 다리에다/뜨거운 줄기를 뿜어내는/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왼쪽은 일제강점기, 오른쪽은 광복이후의 모습). [사진 국가보훈처]

박열(왼쪽은 일제강점기, 오른쪽은 광복이후의 모습). [사진 국가보훈처]

이 시는 권력을 향한 박열의 저항 정신을 잘 나타낸다. 평생 일제에 저항했던 삶을 살았기에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활동은 '민족해방'보다 '계급혁명'을 목표로 했다. 박열과 함께 일제에 맞섰던 일본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金子 文子·1903~1926)도 박열의 시 때문에 그와 함께했다. 가네코는 시를 읽고 "내가 찾고 있던 사람, 내가 하고 싶었던 일, 그것은 틀림없이 그 사람 안에 있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 오른쪽 사진은 박열과 가네코가 수감 중 찍은 사진. [사진 박열의사기념관]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 오른쪽 사진은 박열과 가네코가 수감 중 찍은 사진. [사진 박열의사기념관]

지난달 28일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엔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 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건물에 불을 지른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던 때가 배경이다. 무자비한 조선인 학살이 벌어질 때 박열은 일왕을 폭살하려 했다는 대역죄를 쓰고 일제의 재판을 받았다.

박열은 대중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종류의 독립운동가로 묘사된다. 조선 전통 예복을 입고 당당히 첫 공판에 나서는 모습, 일본인 검사 앞에서 호탕하게 구는 모습, 은근슬쩍 가네코의 가슴에 손을 얹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은 관객들이 그의 참신한 매력에 흠뻑 젖게 만든다. 그가 사형 선고를 받고 재판장에게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고 했다는 유명한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 '박열'은 개봉 일주일 만인 지난 4일 기준 140만 명가량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박열' 포스터.

영화 '박열' 포스터.

자연스럽게 박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의 고향인 경북 문경시에 지어진 박열의사기념공원에도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박열의사기념관, 박열 생가를 찾는 방문객들이다. 특히 기념공원 안에 조성된 가네코 후미코의 실제 묘소를 보기 위해 들르는 방문객들이 많다.

박열은 1902년 2월 3일 당시 경북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 98번지 샘골에서 태어났다. 박열은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뒤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경성고보(현 경기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지하신문을 발행하고 시위에 적극 가담하다 퇴학당했다. 이후 박열은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신문배달·막노동 등 가리지 않고 일하며 독립운동에 나섰다. 22년 4월에는 비밀결사단체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했다.

박열과 가네코가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관 내에 전시돼 있다. 문경=김정석기자

박열과 가네코가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관 내에 전시돼 있다. 문경=김정석기자

이 과정에서 박열은 가네코를 만났다. 요코하마(横浜)에서 태어난 그녀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성적학대로 제국주의 일본과 '천황제', 군국주의에 반감을 가져온 여성이었다. 그는 도쿄시내의 작은 어묵집에서 일하면서 조선 유학생들과 교류했다. 그러던 중 박열의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를 읽고 강한 감동과 함께 그를 흠모하게 됐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민족적 차이를 넘어 계급적 동지로서 항일활동을 펼치면서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그녀는 1926년 우쓰노미야(宇都宮) 형무소에서 옥중 자결한다.

박열은 일본이 패전한 45년 미 군정에 의해 22년 만에 풀려났다. 이후 한국거류민단장으로 활동하다 4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귀국한다. 6·25 전쟁 때 서울 장충동에 있는 친척집에서 은거하다 납북돼 74년 1월 17일 평양에서 별세했다. 89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2012년 박열이 태어난 자리에 박열의사기념공원이 문을 열었다. 지난 4일엔 평일 낮 시간대인데도 기념공원에는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충북 단양에서 온 유성훈(28)씨는 "개봉 당일 영화를 봤다. 당당하게 재판정에서 소신을 말하는 박열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며 "여러 전시품들을 보면서 박열과 가네코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 문경시에 위치한 박열의사기념관 전경. 문경=김정석기자

경북 문경시에 위치한 박열의사기념관 전경. 문경=김정석기자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공원 내 위치한 가네코 후미코 묘소. 문경=김정석기자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공원 내 위치한 가네코 후미코 묘소. 문경=김정석기자

기념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엔 박열과 가네코의 친필, 박열이 속한 단체가 발행했던 기관지, 박열의 재판 소식이 담긴 국내외 신문, 모형으로 재현한 재판정과 감옥 등이 전시돼 있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조선 전통 예복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다.

장성욱 학예연구사는 "영화 개봉 전엔 일반 관람객보다는 박열 의사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지금은 평일 방문객 수가 15~20% 늘었고 개봉 후 첫 주말인 지난 1~2일에는 2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박열 생가. 문경=김정석기자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박열 생가. 문경=김정석기자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관 2층에 마련된 일본 재판정 체험 공간. 문경=김정석기자

경북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관 2층에 마련된 일본 재판정 체험 공간. 문경=김정석기자

문경시는 박열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가 문경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해 홍보에 나섰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운강 이강년 선생, 도암 신태식 선생, 박열 의사 등 수많은 의병·독립운동가와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박동진 중사, 6·25전쟁의 영웅 김용배 장군을 배출한 문경은 호국의 고장"이라고 말했다.

문경=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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