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강, 손에 ‘just be’ ‘아빠’ 문신 새긴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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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25면

 성호준의 세컨드샷

대니얼 강과 그의 아버지. [대니얼 강 인스타그램]

대니얼 강과 그의 아버지. [대니얼 강 인스타그램]

스콧 톰슨은 1983년 미국 콜로라도로 스키여행을 떠났다. 함께 간 4명 중 한 명이 사고로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주검으로발견된 사람은 스콧의 친형 커트였다. 형은 부인과 두 달 된 아이를 남겼다. 스콧은슬픔과 죄책감 속에서 형의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그러다가 형수 주디와 사랑에 빠졌다. 주디와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았다. 그 중 하나가 LPGA 투어에서 뛰는스타 선수인 렉시 톰슨이다. 톰슨 가족은2012년 이 가족사를 공개했다. 누가 뭐라고하든 우리 가족은 자랑스럽다면서다.

‘너만의 인생 살라’ 아버지 뜻 새겨 #톰슨 어머니도 딸의 개성 존중 #독특한 플레이로 골프 풍성하게 해

톰슨 은 지난 4월 열린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막판 4벌타를 받으면서 우승을 놓쳤다. 골프계가 들썩한,당사자로서는 후유증이 오래갈 만한 사건이었다. 놀랍게도 톰슨은 한 달 후 열린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평소 짧은퍼트를 앞에 두고 불안해 했는데 큰일을겪고 나서 오히려 담대해졌다. “무슨 일이있더라도 너를 사랑한다. 나가서 최선을다하라”고 한 어머니 주디의 응원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톰슨은 안니카 소렌스탐 같은 여제가될 기세였으나 또 흔들렸다. 시즌 두 번째메이저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는 공식 인터뷰를 거절하기까지 했다. 사정이 뒤늦게 알려졌다. 톰슨의 어머니인 주디가 자궁암을 앓고 있다고 한다. 톰슨은 킹스밀 우승 직후 어머니의 병에대해 알게 됐다. 상황은 좋지 않아 보인다.톰슨은 여자 PGA 챔피언십 경기 중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여자 PGA 챔피언십 2라운드 공동 선두에 오른 재미동포 대니얼 강의 오른손에는 문신이 두 개 있다. 검지에 ‘just be’,손날 부분에는 한글로 ‘아빠’라고 적혀 있다. ‘just be’는 ‘just be yourself’(있는 그대로의 네가 되라)의 약자다. “누가 뭐라고하든지 너만의 인생을 살라”고 가르친 아버지의 뜻을 손가락에 새겨 놨다. 아버지는 부산 출신으로 화끈한 성격이었다. 어려서부터 딸에게 태권도를 시켰다. 골프를하게 된 후엔 깃대만 보고 쏘라고 가르쳤다. 2013년 대니얼 강의 아버지의 뇌와 폐에서 암이 발견됐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대니얼 강이 한글로 ‘아빠’라고 문신을한 것은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톰슨의 어머니와 대니얼 강의 아버지모두 있는 그대로의 개성을 존중했다. 톰슨은 LPGA 투어에서 가장 공을 멀리 치는 장타자다. 대니얼 강은 화끈한 아버지영향으로 공격적으로 경기한다. 보기도나오지만, 버디도, 이글도 많아 재미있다.2014년엔 홀인원이 세 개나 됐다. 톰슨과대니얼 강의 개성은 LPGA 투어, 골프, 세상을 풍성하게 한다.

톰슨은 “골프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해준다. 코스에 오면 어느 정도 슬픔을 잊을 수 있다”면서도 “어머니가 회복해서 골프장에 다시 응원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대니얼 강은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웠고함께 대회에 다녔다. 그래서 “골프장에 있으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든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사람들이내 손을 잡으면 우리 아빠를 만나는 거잖아요”라고 손을 내민 적이 있다. 대니얼 강이 이번 주 우승도 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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