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협상 합의 없어” vs “개정 특별위 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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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FTA 재협상 혼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박수를 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박수를 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하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달성하기 위해 계속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또 두 정상은 제재는 외교의 수단이란 점에 주목하면서 올바른 여건하에서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한 뒤 이를 위해 고위급 전략 협의체를 구성해 양국 공동의 대북정책을 조율해 가기로 했다.

언론발표 7시간 뒤 공동성명 #FTA 재협상 문구는 없어 #한반도 비핵화 위해 공조키로 #“남북 대화 한국 주도권 지지”

두 정상은 이날 오전 미국 워싱턴DC에서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잇따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한·미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공동성명은 ▶한·미 동맹 강화 ▶대북정책 긴밀 공조 ▶경제성장 촉진을 위한 공정한 무역 발전 ▶동맹의 미래 등 6개 분야로 구성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연내 방한 초청도 수락했다.

하지만 두 정상이 정상회담을 마친 직후 공동 언론발표에서 밝힌 내용은 공동성명과는 사뭇 달랐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에 방점을 찍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내내 작심한 듯 무역 불균형 해소를 외쳤다. 단독 정상회담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우리는 지금 한국과 무역협정을 재논의하고 있다. 공정한 협정이 되길 바란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비롯해 한·미 양국이 위대한 동맹을 위해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며 북핵과 한·미 동맹으로 주제를 돌리려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 근로자들에게 뭔가 득이 되는 게 이뤄지길 바란다”며 무역 이슈를 거듭 제기했다.

두 정상 간의 미묘한 견해차는 공동 언론발표에서도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많은 선택지(option)를 갖고 있다”며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인 데 이어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공정한 부담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공식 거론했다. 그러면서 “한·미 FTA 체결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가 110억 달러 이상 증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7분간 연설하는 동안 문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청와대는 그동안 “공동 언론발표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나 FTA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왔지만 실제 발언은 예상과 달랐다. 이어 문 대통령이 “제재와 대화를 활용한 단계적이고 포괄적 접근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강조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는 뉘앙스에 차이가 있었다.

이 같은 혼선은 언론발표 이후 공동성명이 나오기까지 7시간 넘게 이어졌다. 당초 회담 직후 발표될 예정이던 공동성명은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서명이 늦어지면서 오후 늦게야 공개됐다. 그렇게 나온 공동성명에는 FTA 재협상과 관련된 문구는 없었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북한과의 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주도권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기초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회담 직후 먼저 발표한 것은 국내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FTA 재협상 논란에 대해서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FTA 재협상에 합의한 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백악관은 한·미 FTA 재협상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한·미 FTA를) 재협상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시작할 특별공동위원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 현지에서는 “문 대통령은 국방과 안보라는 실리를 얻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지지층인 백인 근로자들을 위해 FTA를 중점 거론하며 명분을 챙긴 회담”이란 평가가 나왔다. 그럼에도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 정부가 FTA와 방위비 분담이란 숙제를 떠안게 됐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1일 동포 간담회를 끝으로 출국해 2일 오후 귀국한다.

“기대 이상 성공” “수많은 난관 확인”=여야는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총론에서는 긍정 평가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시각차를 보였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회담이 기대 이상의 성공으로 마무리됐다”며 “한·미 동맹도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김성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북한 핵·미사일 해결을 위한 공감대를 확인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한·미 FTA와 방위비 분담 등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워싱턴=강태화 기자, 서울=박신홍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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