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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공권력의 늪''이념의 대리 전쟁터' 같은 경북 성주 소성리, 끝모를 사드 갈등이 원인

중앙일보

입력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사드기지 인근에선 요즘 매일 전쟁이 벌어진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진보단체와 사드 배치를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전쟁이다. 전투의 최전선은 기지로부터 2㎞ 정도 떨어진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만들어졌다.

보수단체 집회 후 연일 '전쟁' 치르는 성주 #충돌 막으려 울며 겨자먹기로 공권력 투입 #"언제쯤 끝날 것 같으냐"며 고심하는 경찰

두 세력은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공방전을 벌인다.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보수단체가 최근 이곳에서 집회를 벌이기 시작하면서다. 가장 규모가 컸던 22일에는 보수단체 회원 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사드 철회와 평화를 기원하는 파란 리본이 가득하던 곳에 성조기가 나부끼는 기막힌 장면이 연출됐다.

지금 소성리 마을회관은 누군가에겐 반드시 수호해야 할 '성지'이고, 또 누군가에겐 반드시 탈환해야 할 '고지'다. 하지만 두 세력이 매일 충돌하는 이곳은 경찰에겐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은 곳이다. 경찰은 이 충돌이 언제 종지부를 찍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공권력을 시골마을에 쏟아부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 27일 보수단체가 마을회관 앞 도로를 행진하려다 진보단체에 가로막혔을 때 경찰은 반나절동안 중간에 끼어 오도가도 못했다. 양측 모두 경찰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보수단체는 "정당한 집회 신고를 했는데 가지 못하게 막는다"고, 진보단체는 "충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경찰이 이를 방조한다"고 비난했다.

지난 27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찬성 집회를 벌이고 있다. 성주=김정석기자

지난 27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찬성 집회를 벌이고 있다. 성주=김정석기자

지난 27일 오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종교 행사를 하고 있다. 성주=김정석기자

지난 27일 오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종교 행사를 하고 있다. 성주=김정석기자

경찰은 마땅한 '출구전략'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보수단체가 집회신고를 낸 기한이 다음달 13일까지지만, 또 다시 집회신고를 하면 이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충돌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을 수도 없다. 집회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언제 집회를 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한 경찰 간부는 기자에게 "언제까지 이럴 것 같으냐"고 물으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 27일엔 보수단체가 "1000여 명이 집결할 것"이라고 예고하는 바람에 박화진 경북경찰청장을 비롯한 지휘부 상당수가 현장에 나왔다. 큰 충돌을 예상한 경찰이 바짝 긴장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집회가 열리기로 한 오후 2시엔 보수단체 회원이 10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1시간 뒤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됐을 때도 인원은 200명 수준이었다. 시골마을에서 열린 소규모 집회 때문에 경북 전체에 지휘 공백이 일어난 꼴이다.

지난 22일 오후 경북 성주군 성주군청 앞 도로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배치를 찬성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성주=김정석기자

지난 22일 오후 경북 성주군 성주군청 앞 도로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배치를 찬성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성주=김정석기자

끝 없는 전쟁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 세력이 연일 공방전을 벌이고, 경찰이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입되는 상황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 상황은 결국 '불확실성'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한 결정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도 언제 착수할지 모른다. 이런 가운데 사드는 부분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유류와 장비를 반입하기 위한 군의 시도도 진행형이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공권력이 쓸데없이 새는 것도, 미국과 중국의 의구심이 누적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의 최전선을 방치하면 마을회관을 넘어 더 밖으로 확대될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오면 이런 불확실성을 끝내줄 결단이 나올까.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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