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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새 치료법 한 번만", 하지만 한 살 배기 연명치료 결국 중단 결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희귀 불치병에 걸린 생후 10개월 된 아기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라고 유럽 인권재판소가 27일(현지시간) 결정했다. 더 이상의 연명 치료가 무의미하고 환자의 고통을 줄여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유럽 인권재판소, 미토콘드리아 결핍증후군 10개월 찰리에 "치료 중단" #영국 대법원까지 패소하자 부모가 마지막 소송 냈지만 "고통만 가중" #모금한 18억원은 다른 환자 위해 기부 예정, '존엄한 죽음' 논란 #국내에선 연명 치료 환자와 가족이 원할 경우 치료 중단하는 법 내년 시행

환자의 치료를 맡은 런던의 그레이트 오몬드 스트리트 병원 측은 이미 지난 3월 “존엄한 죽음을 위해 치료 중단을 허가해 달라”는 소송을 영국 법원에 제기해 승소했다. 하지만 부모가 이에 반발, 유럽 인권재판소의 최종 결정을 요구하며 항소했다.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가 새로운 치료를 받게 해달라는 것이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소는 “미국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완치될 수 없는 만큼 계속 치료행위를 하는 것은 환자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것”이라며 기각했다.

희귀 난치병에 걸린 찰리를 돌보고 있는 부모. 미국에 데려가 새 치료법을 받게 하려고 18억원을 모금했으나 소송에서 결국 패했다. [모금사이트]

희귀 난치병에 걸린 찰리를 돌보고 있는 부모. 미국에 데려가 새 치료법을 받게 하려고 18억원을 모금했으나 소송에서 결국 패했다. [모금사이트]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미토콘드리아 결핍 증후군을 앓고 있는 영국 런던의 찰리 가드. 찰리의 부모인 크리스 가드와 아내 코니는 미국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이미 17억원 정도를 모금했다. 찰리는 생후 8주 만에 미토콘드리아 결핍 증후군에 걸려 근육과 뇌 등 인체 기관이 급격히 약화돼 인공호흡에 의지해왔다. 세계적 희귀질환으로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찰리가 16번째였다.

재판소의 결정에는 찰리를 치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미국 의사의 법정 진술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부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재판소는 찰리에게 제공 중인 연명치료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병원 측이 찰리의 부모와 상의해 조만간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것이라고 영국 언론이 전했다.

우편배달부로 일하는 크리스와 코니 부부는 찰리를 미국에서 치료받도록 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126만 파운드(약 17억원)을 모금했다. 2개월 동안 전 세계의 8만 여명이 5파운드에서 5000파운드까지 기부에 참여했다.
코니는 찰리가 미국에서 치료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할 경우 이 돈을 같은 질환을 앓는 다른 환자를 위해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찰리가 받지 못하는 치료법이 미토콘드리아 결핍 증후군을 앓는 다른 어린이 환자에게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다른 아이들이 도움을 받고 치료법이 개발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영국에서는 부모와 의료진이 아이의 치료에 대한 의견이 다를 경우 양측 누구라도 치료 지속 여부 등을 결정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국에선 지난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뗀 의사와 가족이 살인죄로 기소되면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18년 만인 지난해 치료 효과 없이 임종만 연기시키는 심폐소생술이나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연명 의료로 규정하고, 환자나 가족 2명 이상이 이에 대한 중단을 의료진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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