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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바꿔 대법원장 권한 분산"…사법개혁 개헌론 공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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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의 법관 연구모임 활동 방해 의혹 사건으로 법원 내부에서 불붙은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독점' 논란에 개헌론까지 가세하면서 법원의 미래를 둘러싼 논의가 복잡하게 뒤얽히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 분과위 주최 토론회서 #대법원장 권한 '사법평의회'로 이관 제안 #법원선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 한 목소리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사법분과소위원회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이 신뢰하는 사법부'를 위한 헌법개정 토론회'>를 열고 평판사들이 참여하는 '사법평의회'를 만들어 현재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사법행정권한을 대거 넘기자고 제안했다.

자문위원인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제에서 "헌법상 기구로 사법평의회를 신설해 대법관 후보 추천권과 법관 인사권 등 사법행정기능을 모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2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헌특위 자문위(사법분과위) 주최로 열린 개헌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사법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유길용

2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헌특위 자문위(사법분과위) 주최로 열린 개헌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사법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유길용

정 교수가 소개한 '자문 소위 안'에 따르면 사법평의회는 16명으로 평의원으로 구성되고 대통령이 2명, 국회가 8명, 법관회의가 6명의 평의원을 지명한다.

사법평의회는 6년 단임의 상임 평의원들로 구성되는 상설기구다. '자문위 안'은 국회 지명 위원은 5분의 3의 찬성을 얻어 지명하고, 법관 위원은 법관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토록 했다.

변호사 자격이 없는 법학 전문가도 참여 가능성을 열어 놨다. 정 교수는 “국회 내 어떤 정파도 다수로는 평의회를 장악할 수 없도록 했다”며 “선출직 권력을 통한 민주적 통제와 법관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모두 실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대법원장에 집중된 사법행정기능의 분산이라는 방향에 공감하는 이들이 주로 토론자로 초청됐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국민이 위임한 사법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다만 “대통령은 형식적 임명권만 갖고 국회와 법관들이 각각 6명씩 지명해 12인의 위원회를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종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도 “법무부의 탈검사화와 마찬가지로 ‘사법행정의 탈판사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 헌법조문에 ‘평의회’란 건 없다“며 ‘사법행정위원회’란 용어를 제안했다.

사실상 개헌론의 타겟이 된 법원행정처도 토론자를 보내 강하게 반박했다. 이희준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인사●징계 등 각 위원회를 통해 외부 인사가 참여해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지금도 마련돼 있다”며 “이런 모든 권한을 모아서 매머드 조직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심의관은 또 "세계 표준으로 통하는 '법원의 독립'은 '사법행정의 독립'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사법평의회는 외부의 견제를 넘어서 법원의 자율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토론자들은 '신중론' 또는 '회의론'을 폈다.
방승주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기본적인 문제인식과 취지에 동의하지만 아직 논의가 부족한 유럽 일부 국가의 제도를 들여와서 사법권력의 민주적 통제와 독립의 조화를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최재호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은 “정치 권력인 입법부가 사법부의 인사, 징계와 운영 전반에 개입한다면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헌법 전반에 걸쳐 다른 권력기관과의 권력분립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도 논의돼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동안 내홍을 겪어 온 판사사회지만 사법행정 개혁과 관련해 정치권과 학계 등 '외부의 힘'이 커지는 상황에 대해선 함께 우려하는 분위기다.

판사들의 대의기구인 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해 사법행정권을 견제하자고 주장해 온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한 판사는 “자문위의 사법평의회 신설해 법원행정처의 기능과 권한을 통째로 넘기자는 주장이 현재의 사법부 관료화 문제에 실효성있는 해결책이 될지 의문”이라며 “법원 내부엔 회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법원행정처를 거친 한 고법 부장판사는 "사법부 운영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외부의 개입을 늘리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시킬 우려가 큰 방안"이라며 "법원의 내홍이 정치권과 학계의 과도한 주장에 명분을 준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대법관 수 24명으로 대폭 증원하고 임기(6년)를 폐지해 정년을 보장하는 방안과 법관의 10년 단위 재임용심사 폐지안도 나왔다. 또 헌법재판소 구성과 관련해서도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권을 행사하는 헌법재판관 선출 방식을 국회가 선출하고, 임기를 현행 6년에서 9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제시됐다. 사회를 맡은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개헌특위 자문위원)는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바탕으로 자문위의 헌법개정안을 특위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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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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