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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도시바 인수로 방패 쥔 SK하이닉스, 창까지 쥘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SK하이닉스가 방패는 확실히 쥐었다. 이제 창까지 쥘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낸드플래시 시장 지배력 약화는 막아 #도시바와 기술 공유 등 시너지가 관건 #독과점, 일본 여론 고려해 융자만 제공 #"직접 지분 없어도 제휴 기회 많을 것" #메모리반도체 시장서 한국 위상 강화 #"중국 추격 막으려면 기술 격차 벌려야"

SK하이닉스가 한·미·일 연합을 통해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두고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렇게 평했다. SK하이닉스가 이번 인수전에서 기대한 두 가지 노림수를 방패와 창으로 표현한 것이다.

방패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의 입지 약화를 막아내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선 확고한 2위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점유율이 11.5%에 불과한 4, 5위권 업체다. 도시바가 미국 웨스턴디지털이나 마이크론 같은 경쟁 업체로 넘어갈 경우 시장 지배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더 무서운 결과는 신규 사업자의 진출이다. 인수전에 관심을 가졌던 대만의 훙하이, 미국의 애플 같은 업체가 낸드플래시 사업을 시작할 경우 6개 업체의 과점 구도가 깨진다. 설비 증설 경쟁이 시작되면 언제 제품 가격이 폭락할지 모른다.
정창원 노무라금융투자 전무는 “D램 시장에서 과점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로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공고한 과점 체제가 형성되길 기대할 것”이라며 “같은 맥락에서 이번 협상의 결과로 가장 크게 웃을 곳은 삼성전자”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D램은 물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1위 업체다.

창까지 쥘 수 있느냐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와 손을 잡고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내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은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17%)이 삼성전자(36.7%)의 반 토막도 되지 않는 도시바지만, 낸드플래시 시장의 원천기술을 독식하다시피 한 저력의 회사다. 낸드플래시라는 제품을 처음 발명한 것도, 최근 급성장하는 3차원(3D) 낸드플래시 개념을 고안한 것도 도시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낸드플래시 시장의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도 평면 낸드플래시 기술은 대부분 도시바에서 들여왔다”며 “도시바가 투자 타이밍만 놓치지 않았어도 삼성전자 못지않게 시장 지배력을 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지분 투자가 아니라 융자 제공의 형태로 컨소시엄에 참여한 SK하이닉스가 얼마나 도시바의 기술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다. SK하이닉스는 한·미·일 연합에 3000억 엔 정도의 융자를 제공하는 형태로 참여했다. 21일 도시바 이사회가 발표한 우선협상대상자 명단에 산업혁신기구·베인캐피털·일본정책투자은행 등만 나오고 SK하이닉스의 이름이 직접 거론되지 않은 건 그래서다.

SK하이닉스가 직접 지분을 사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독과점 시비가 무섭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을 사들인 것처럼 비치면 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11%대에서 28%로 치솟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요국 경쟁당국이 ‘독과점’이라며 딴지를 걸 수 있다.

일본 여론도 문제다. “외국 반도체 회사에 일본 기술을 유출할 수 없다”는 게 전반적 일본 정서다. 한·미·일 연합에 참여한 일본 정부계 펀드가 1조 엔 가까운 돈을 대고, 도시바 경영진의 경영권을 49% 보장받기로 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런 지분 관계를 고려해도 이번 컨소시엄에 참여한 유일한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는 적잖은 실익을 거둘 거라는 게 반도체 업계의 전망이다. 특히 도시바가 보유한 낸드플래시 원천기술과 SK하이닉스의 상용화 기술이 합쳐지면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를 위협할 만한 제품도 나올 수 있을 거란 예측이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미·일 연합엔 1000억 엔 이상의 돈을 댄 투자자가 6곳이 넘는 걸로 알려져 있어 특정 회사가 주도권을 쥐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투자자 중에선 SK하이닉스가 유일한 반도체 회사니만큼 기술 공유나 사업 제휴의 기회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인수가 성사되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질 걸로 전망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의 71.4%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두 회사의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49.1%에 그친다.
송용호 교수는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공지능·자율주행기술 등의 확산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은 D램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걸로 예상된다”며 “향후 2, 3년 안에 기술 격차를 더 벌려 중국의 추격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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