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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대영박물관서 한국인으론 첫 소장품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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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올 가을 영국 런던을 들르는 한국인들은 어깨를 으쓱거려도 된다. 영국이 자랑하는 대영박물관에서 한국 소장가의 수집품 전시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대영박물관이 초대한 한국 소장가는 한빛문화재단 이사장인 한광호(韓光鎬.75)씨로 그가 모은 탕카(티베트의 불교회화) 52점이 '티베트의 유산-한광호 컬렉션의 회화들'이란 제목으로 다음달 11일부터 오는 11월 23일까지 두달여 동안 선보인다.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품전을 여는 건 한국인으로 제가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저 자신에게 영광스런 일인 데다 한국의 문화 수준을 알릴 수 있어 기쁩니다."

서울 평창동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韓씨는 "뭘 하나 남겨보겠다고 애쓴 평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얼굴을 붉혔다. 1962년 화폐개혁 직후 '거금' 5천원(현재 가치로 5천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韓씨는 주장했다)을 주고 산 도자기를 시작으로 40년에 걸쳐 좋은 미술품이라면 천리길을 마다 않고 달려가 모아온 외길 인생이 이제야 세상의 평가를 받기 시작한 셈이다.

"약을 팔아 번 돈을 모조리 유물 수집에 털어넣었지만 후회는 없어요. 발품을 팔아 내 곁에 둔 예술품이 너무 좋아요. 자식들에게 남겨줄 것도 없고 이걸로 돈 벌 욕심도 없습니다. 인류가 창조한 걸작을 하나라도 더 보존해 후손들이 정신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외국계 제약사인 한국베링거잉겔하임과 농약제조회사인 한국삼공을 이끌어온 韓씨는 사무실 벽마다 그림을 걸고 곳곳에 도자기를 둬 회사를 찾아온 고객들로부터 "이거 공장이 아니라 박물관이네"란 말을 들어왔다.

99년 자신의 아호를 따 세운 화정(和庭)박물관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구경하기 힘든 유럽의 부채와 약항아리 등 다양한 미술품 2만점을 갈무리해 왔다. "대영박물관하고는 인연이 오래됐어요. 제 미술품 수집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라 할 수도 있지요. 65년 해외 여행길에 대영박물관에 들렀는데 중국실과 일본실은 번듯하게 있는데 한국실이 없더라구요. 잘 살펴보니 복도 한구석에 한국 유물이라고 몇 점이 굴러다니는데 가슴이 참 아픕디다. 제 자신이 초라한 몰골로 그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어요. 다행히 한국실이 독립해 문을 열었지만 좀 빈약한듯 해서 제가 1백만 파운드(약 16억원)를 기부했습니다. 그 돈으로 산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최근 '대영박물관 2백50년사' 도록에 수록돼 뿌듯했어요."

이번에 바다를 건너갈 탕카는 티베트 예술의 '고갱이'라 불리는 문화유산이다.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書)'에 나오는 영혼의 가르침과 성인의 말씀을 티베트의 문화와 역사 속에 녹여넣어 회화로 빚어냈다. 티베트 불교 교리에 나오는 여러 존상(尊象)을 그린 불교회화로 도를 구하는 이들의 길라잡이로 불린다.

무신론자지만 불화(佛畵)를 좋아해서 탕카를 한 두 점씨 모으다가 그 아름다움에 빠져버렸다는 韓씨의 탕카 컬렉션은 이 분야에서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아 연구자들이 소장품을 보러 한국을 찾을 만큼 이름이 났다. 닐 맥그리거 대영박물관장이 "한광호 이사장의 탕카 특별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서문을 쓸 만하다.

韓씨는"대영박물관 전시에 이어 내년 2월 12일부터 독일 베를린 인도미술박물관에서 유럽 순회전이 시작하니 탕카를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할까 보다"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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