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한 '꼴찌 롯데'의 자존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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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명문교를 거론하는데 '3-2-1 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3학년-2학년-1학년의 최고선수를 꼽아 그 비중을 따지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최고로 꼽히는 팀은 단연 95년 광주일고다. 당시 광주일고에는 3학년 서재응(뉴욕 메츠), 2학년 김병현(보스턴 레드삭스), 1학년 최희섭(시카고 컵스)이라는 거물이 있었다. 여기에 도전할 만한 팀으로는 91년 부산고(염종석-손민한-주형광)와 신일고(조성민-강혁-김재현), 90년 공주고(신재웅-박찬호-노장진) 등이 꼽힌다.

이 중 91년 부산고 멤버는 모두 국내프로야구에서, 그것도 부산 연고인 롯데에서 나란히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 기둥의 정 중앙에서 롯데를 떠받치고 있는 선수가 바로 손민한(28.사진)이다.

손민한은 지난 18일 대표팀 예비엔트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꼴찌팀 롯데선수 중 유일하다. 당시 손민한의 올 시즌 성적은 1승9패. 승률 1할의 투수에게 국가대표가 될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김재박 대표팀 감독은 "국제대회는 단기전이라서 적응력이 뛰어나야 한다. 특히 경험이 많은 선수가 유리하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국제대회라면 손민한이 누구에게도 뒤질 게 없다. 92년 멕시코세계청소년대회를 시작으로 93년 이탈리아 대륙간컵, 94년 니카라과 세계선수권, 95년 일본 유니버시아드, 96년 애틀랜타올림픽,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빼놓지 않고 참가했다.

손민한은 지난 19일 사직 LG전에서 진가를 확인시켰다. 7이닝 동안 3안타만을 내주며 무실점으로 꽁꽁 묶었다.

팀이 2-0으로 이겨 지난 6월 3일 잠실 LG전 이후 2개월16일 만에 달콤한 승리를 맛보며 시즌 2승째를 올렸다.

손민한은 "6월 8일 광주 기아전에서 타구에 맞아 오른손 엄지가 부러져 한 달을 쉬면서도 정신적으로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의미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승리를 따냈다고 기뻐할 때도 아니고 저조한 성적에 낙담하지도 않겠다. 팀의 무너진 자존심을 되찾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롯데의 기둥으로 다시 서겠다는 '오기'가 담겨 있었다.

이태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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