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주일 전 패배 설욕, 첫 승 합작한 용감한 형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이정훈(左), 이정환(右)

이정훈(左), 이정환(右)

“떨린다.”(형 이정환)

이정환, KPGA V1 오픈 감격 우승 #2주 연속 연장 김승혁에 ‘장군멍군’ #캐디로 나선 동생, 심리 안정 도와

“떨긴 뭘 떨어.”(동생 이정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장전.

그린 위에서 퍼트를 남겨두고 이정환(26·PXG)과 캐디를 맡은 동생 이정훈(23)이 나눈 대화다. 2주 연속 연장전에 진출한 탓이지 눈에 띄게 긴장했던 이정환은 동생의 말 한 마디에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일주일 전 연장전 패배를 안겼던 김승혁(30)을 꺾고 감격스러운 첫 승을 신고했다.

이정환이 18일 충남 태안의 현대더링스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투어 카이도시리즈 2017 카이도 골든 V1 오픈에서 합계 17언더파로 김승혁과 공동선두를 이룬 뒤 연장 첫 홀에서 파를 잡아내 보기를 범한 김승혁을 따돌렸다. 올 시즌 개막전부터 동생에게 캐디백을 맡긴 이정환은 2010년 프로 데뷔 이후 66개 대회 만에 감격적인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정환은 1라운드부터 마지막 4라운드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은 끝에 정상에 올랐다.

이정환이 18일 카이도시리즈 2017 카이도 V1오픈에서 동생과 함께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사진 KPGA]

이정환이 18일 카이도시리즈 2017 카이도 V1오픈에서 동생과 함께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사진 KPGA]

동생 이씨는 골프를 잘 모르는 일반 대학생(동국대 화학공학과)이다.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구하다가 형의 제안을 받아들여 골프백을 메게 됐다. 이씨는 “골프는 잘 모르지만 그냥 형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코스에서도 평소에 하는 얘기들을 건넨다”고 설명했다. 이정환은 “동생에게 물어보는 건 없다. 그래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KPGA 준회원이자 유일한 스승인 아버지 이후근(55)씨는 “그 동안 샷은 좋았는데 멘털이 약했다. 동생과 함께 플레이를 하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지난 주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에 이어 KPGA투어 사상 처음으로 2주 연속 같은 선수들이 연장전을 치렀다. 이정환은 “또 운명의 장난인가”라며 연장전을 준비했다. 이정환과 김승혁은 티샷을 잘 보냈고, 비슷한 거리의 버디 퍼트를 남겨뒀다. 7m 거리에서 시도한 김승혁의 과감한 퍼트는 약간 길었다. 이정환은 홀 가까이에 붙여 가볍게 파를 낚았다. 이정환은 마음속으로 연장 두 번째 홀을 준비했다. 하지만 김승혁이 1.5m 거리의 파 퍼트를 놓쳐 이정환의 첫 우승이 확정됐다.

이정환이 18일 카이도시리즈 2017 카이도 V1오픈에서 동생과 함께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사진 KPGA]

이정환이 18일 카이도시리즈 2017 카이도 V1오픈에서 동생과 함께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사진 KPGA]

이로써 김승혁과 이정환은 일주일 사이 ‘장군멍군’을 주고받았다. 지난주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먼저 리드를 잡았던 선수가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대회 결승전에서는 김승혁이 줄곧 앞서가다 정상에 등극했고, 이번에는 이정환이 3타 차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돌입했다가 연장전까지 치러야 했다. 이정환은 “이번 대회에서 다시 만난 승혁이 형과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사이좋게 1승씩을 주고받아서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이정환이 18일 카이도시리즈 2017 카이도 V1오픈에서 동생과 함께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사진 KPGA]

이정환이 18일 카이도시리즈 2017 카이도 V1오픈에서 동생과 함께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사진 KPGA]

이정환은 키 1m88㎝로 KPGA투어 최장신 선수다. 고교 때 당한 무릎 부상 탓에 80%의 힘으로 스윙을 한다. 그럼에도 드라이브샷 거리가 280~290야드나 된다. 올시즌 그린 적중률 82.3%로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는 이정환은 아이언 샷이 장기다. 그는 “오늘이 할머니 생신이다.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정환은 또 “동생에게 캐디피를 주는 건 물론이고 복학하면 학비까지 책임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태안=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