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북리뷰

세상을 바꾸는 비혼여성들. 신간 '싱글 레이디스'

중앙일보

입력

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싱글 레이디스
레베카 트레이스터 지음
노지양 옮김
북스코프, 504쪽, 1만8000원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싱글 레이디스

싱글 레이디스

학자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13세 전후로 결혼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대 풍습이 그랬다. 시공을 건너 뛰어보면 우리나라에서 과부재가금지법이 폐지된 것은 1894년이다. 시대·장소에 따라 ‘정상적’인 것이 바뀐다. ‘싱글우먼’이라는 삶의 양식이 ‘뉴 노멀(new normal)’로 떠오르고 있다.
책 제목을 비욘세의 2008년 노래에서 따온 『싱글 레이디스』는 미국 싱글우먼의 세계를 역사학·사회과학·인터뷰기법을 동원해 해부했다.
미국에서 주요 페미니즘 작가인 레베카 트레이스터는 2009년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해에 결혼한 미국 여성의 비율이 역사상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저자는 5년간 100여명의 여성을 인터뷰했다. 그 중에는 전설적인 페미니즘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베티 프리댄, 성희롱을 사회 이슈로 부각시킨 애니타 힐이 포함됐다. 아이 넷을 3명의 남자들과 낳았으며 지금 다섯번 째 임신중인 농업 종사자, “일찍 결혼하면 인생 망친다”는 여대생도 만났다.
문제점보다는 ‘싱글 예찬(禮讚)’ 쪽으로 기운 『싱글 레이디스』는 비혼 여성은 “선택 받지 못한,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 여성이라 것과 같은 사회적 편견과 싸운다. ‘싱글우먼 혐오’는 미국 제도권 매체에서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미국의 우익 라디오 토크쇼 출연자들은 ‘싱글 여성들은 섹스에 환장했다’는 식의 망언을 쏟아낸다. 그렇지 않다는 것, ‘결혼이 최상의 대(對) 가난 정책’이라는 미국 보수주의자의 견해가 틀렸다는 것을 저자가 논증한다.
저자는 싱글우먼이 사회 변화·혁명의 주역이라고 주장한다. “싱글우먼의 역사가 곧 미국의 역사다”라는 것이다. 싱글우먼은 노예해방 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 노동운동, 페미니즘 운동에 앞장섰다.
저자는 또한 싱글우먼 세계의 지극한 다양성도 드러낸다. 성생활이 활발한 싱글우먼, 섹스리스 싱글우먼도 있다. 같은 싱글 여성도 크고 작은 생애주기의 부침에 따라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산다. 원나잇스탠드가 일상화된 삶을 살다가, ‘나 좋다고 쫄쫄 따라다니던 그 많던 남자들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남자 기근’을 체험하기도 하다가 오직 한 남자만을 사랑하기도 하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운 저자의 주장은 ‘싱글우먼들이 기혼 여성의 삶도 개선했다’ ‘싱글우먼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보존하고 개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싱글여성은 결혼을 유보하거나 거부함으로써 남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 낮추기’를 거부한다. 결혼하겠다는 남성은 이제 몸관리도 하고 책도 좀 읽고 저축도 좀 해야 한다.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눈길을 줄만한 남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장자크 루소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까지 다채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이 책은 ‘싱글여성 보고서’이기도 하고 그들을 위한 고민 해결 핸드북이기도 하다. 성생활·우정·커리어· 외로움·출산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다른 비혼여성들은 어떤 솔루션을 내놓는지 종합했다.
출산은 싱글우먼에게 가장 심각한 이슈다. 2013년부터 미국에서 맏이로 태어나는 사람의 반은 어머니가 싱글맘이다. 24세에 첫경험을 한 저자 또한 싱글맘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14년 동안 싱글로 살았다.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애는 낳자고 결심했다. 그는 엄청난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러던 중 식사 테이크아웃을 위해 식당에 갔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35세에 결혼해 아이를 둘 낳았다.

S-Box
이 책의 타깃 독자는 누구일까. 싱글우먼은 당근 봐야 한다. 지난 대선에 나온 홍준표·유승민 후보도 읽어야 한다. ‘기·승·전·투표’다. 투표가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우리네 삶을 바뀐다. 미국의 경우 2012년 비혼 여성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됐다. 그 중 다수는 미국 민주당 지지자다. 우리나라 보수가 이 책을 무시한다면 우리나라 비혼 여성 유권자들 또한 더불어민주당의 표밭이 될 것이다. 『싱글 레이디스』를 향한 미국 보수파의 시선은 곱지 않다. 국가가 남편 역할을 대신해주는 ‘남편국가(hubby state)’를 이 책이 지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황은 다르다. 진보건 보수건 강한 국가를 지향한다. 우리나라 보수는 진보 어젠다를 잘 훔치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이 책 464~466페이지에는 싱글우먼 시대를 위한 정책 제안이 담겨있다. 먼저 보고 먼저 실천하는 게 장땡이다.

저자 레베카 트레이스터 홈페이지  http://www.rebeccatrais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