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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장관 2명이나 '배출'한 악명 높은 '낙동강 페놀사건'이란

중앙일보

입력

두산전자의 잇따른 낙동강페놀유출사건으로 분노한 대구시민들이 동성로에서 관계 공무원의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두산전자의 잇따른 낙동강페놀유출사건으로 분노한 대구시민들이 동성로에서 관계 공무원의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11일 환경부 장관에 김은경(61) 후보자가 내정됐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1991년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던 낙동강 페놀 사건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당시 대구에 거주하던 김 후보자는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 페놀로 오염된 수돗물을 마신 피해자이자, 피해 배상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페놀 아줌마'로 불렸다.

91년 구미 두산전자 페놀이 낙동강으로 유출 #대구시민 상수원 오염되면서 '죽음의 물' 파문 #당시 두산 OB맥주·코카콜라 불매운동 불붙어 #두산 경쟁사 하이트맥주 '물 마케팅'으로 1위 올라 #김은경 내정자 당시 평범한 주부서 피해배상 운동 #시민대표 이재용씨도 노무현 때 정부 환경부 장관 #페놀 사건은 환경장관 1명 낙마, 장관 2명 배출한셈 #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91년 3월 14일 당시 경북 구미시 구포동에 있던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 탱크에서 파이프가 파열됐다. 30t의 페놀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으로 흘러들었고 이어 대구 시민의 상수원 취수장까지 들어갔다. 약 8시간 동안 배출된 페놀로 인해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취수장 측은 염소를 다량 투입하는 방법으로 단순 소독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페놀은 염소와 결합할 경우 화학반응을 일으켜 클로로페놀로 변한다. 농도 1ppm 이상 클로로페놀은 독성이 강해 암이나 중추신경 장애 등을 유발한다. 낙동강을 타고 흘러 부산·마산을 포함한 영남 모든 지역의 취수원 물이 십시간에 '죽음의 식수'로 둔갑했다.

1991년 경북 구미공단의 두산전자에서 가전제품용 회로기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던 페놀 원액이 새어나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대구의 수돗물을 오염시킨 ‘페놀 사태’. 2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옛 공장의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잡초만 무성하다. 프리랜서 공정식

1991년 경북 구미공단의 두산전자에서 가전제품용 회로기판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던 페놀 원액이 새어나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대구의 수돗물을 오염시킨 ‘페놀 사태’. 2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옛 공장의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잡초만 무성하다. 프리랜서 공정식

이에 따라 두산전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페놀 유출 사고가 단순한 과실일 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영업이 재개됐다. 그러던 중 그해 4월 22일 송출 파이프의 이음새 부분이 파열돼 또다시 페놀원액 2t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일어나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결국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났다. 뿐만 아니라 사태 책임을 물어 노태우 정부는 허남훈 환경처 장관과 한수생 차관을 경질했다.

당시 김 후보자는 전업주부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결혼한 뒤 시댁이 있던 대구로 옮겨 생활하고 있었다. 김 후보자도 페놀 피해자 중의 한 명이었다. 당시 대구 등 영남지역 주민들은 환경처에 환경분쟁조정 신청을 하는 등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한 활동을 벌였는데, 김 후보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각 시민 단체는 수돗물 페놀 오염대책 시민단체 협의회를 결성해 두산 측에 물질적·정신적 피해 1만3475건에 대해 170억100만원의 배상을 청구했다. 특히 임산부 8명이 자연유산·임신중절 등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두산 측은 이들 중 1만1036건(10억1800만원)에 대해 배상했지만 임산부의 정신적 피해 등은 배상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사회복지법인 '사랑의전화' 소속 노인회원 1천여명이 1991년 4월 1일 낮 12시 서울 신공덕동 사랑의전화 건물앞에서 낙동강페놀오염사건에 항의, OB맥주, 코카콜라 모형화형식을 갖고 두산그룹의 부도덕성을 규탄했다. [중앙포토]

사회복지법인 '사랑의전화' 소속 노인회원 1천여명이 1991년 4월 1일 낮 12시 서울 신공덕동 사랑의전화 건물앞에서 낙동강페놀오염사건에 항의, OB맥주, 코카콜라 모형화형식을 갖고 두산그룹의 부도덕성을 규탄했다. [중앙포토]

김 후보자는 시민단체협의회에 참여해 두산그룹의 부도덕성을 강하게 규탄했다. 당시 대구 시내 수퍼마켓 업주들은 두산제품인 OB맥주·코카콜라 등을 진열대에서 치웠다. 수퍼마켓 문앞에 ‘우리매장에서는 국민의 생명까지 도외시하는 두산제품은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페놀 사태의 반사이익은 하이트맥주가 챙겼다. 국민들이 페놀 사건을 계기로 먹는 물의 안전에 민감해지자 마케팅 기회로 활용했다. 당시 OB맥주에 밀려 만년 2위에 머물렀던 하이트맥주는 두산그룹이 페놀 사태로 타격을 받자 ‘지하 150m 천연암반수로 만든 깨끗한 하이트 맥주'라는 문구를 사용해 소비자 마음을 적극 공략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물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하이트맥주의 판매량은 치솟았고 출시 3년만인 96년 시장점유율 43%를 기록하며 OB맥주를 앞질렀다.

생수시판 허용방침에 따라 생수업체간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1994년 3월 수요가 늘어난 생수를 배달하고 있다. [중앙포토]

생수시판 허용방침에 따라 생수업체간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1994년 3월 수요가 늘어난 생수를 배달하고 있다. [중앙포토]

페놀 사건 이후 94년 3월16일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생수의 국내 시판을 공식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페놀 사건을 계기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그 전까지 낯설었던 생수시장이 본격 형성되기 시작했다.

김은경 후보자

김은경 후보자

페놀 사건으로 환경문제에 눈 뜬 김 후보자는 서울로 이주해 노원구 상계동 소각장 반대 주민운동의 중심에서 맹활약했다. 95년 노원구의원에 당선됐고, 98년에는 서울시의원에 뽑혔다. 2003년 초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환경전문위원을 지냈다. 2006년부터는 청와대 지속가능발전 비서관을 지냈는데 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현 대통령을 만났다고 한다.

이후 2010년 환경관련 교육·연구를 위주로 하는 시민단체인 ‘지우 지속가능성센터’를 설립해 대표직을 맡아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 위원으로 활동해왔다.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한편 페놀 사건은 김 후보자 외에도 앞서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2005년 6월~2006년 3월)도 배출했다. 이 전 장관은 페놀 사건 당시 대구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페놀 사건과 악연이 있는 환경운동가 출신의 이재용·김은경씨가 각각 노무현 정부의 환경부 장관과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결과적으로 낙동강 페놀 사건은 한 명의 환경부 장관을 낙마시키고 두 명의 환경부 장관을 배출한 셈이 됐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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