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외교 "유엔 사무총장 출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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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반기문 장관의 출마를 14일 발표한 유명환 외교부 1차관은 "로 프로파일(low profile.저자세라는 의미)로 조용히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의 임기는 연말까지다. 후임자 선출 시기는 6월에서 10월 설까지 다양하다. 유엔 사무총장 선거는 국제정치역학 관계에 따라 좌우된다.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변수도 많다. 특히 서로 이해가 얽힌 5개 상임이사국(미.영.프랑스.중.러)의 반대를 받아서는 안 되는 싸움이다. 정부의 저자세 접근법은 그 때문이다.

◆ 왜 출마하나=아시아 국가에서 사무총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대 사무총장은 대륙별로 돌아가며 맡는 관례가 적용돼 왔다. 지역 순번제다. 아시아는 3대인 미얀마 출신 우탄트 사무총장 이후 34년간 총장을 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번은 아시아 차례라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퍼져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반 장관의 출마를 물밑에서 추진해 왔다. 4차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9.19 공동성명이 나온 이후다. 노무현 대통령도 정부 후보를 내는 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북핵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으로선 유엔 사무총장은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다.

◆ 미.중이 최대 변수=선출의 결정권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 쥐고 있다. 거부권 때문이다. 안보리 예비투표에서 다수표를 얻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6대 사무총장인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의 경우 14개국 지지를 받았지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끝내 재선에 실패했다. 특정 상임이사국과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나머지 국가들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외교가에선 이를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라고 부른다.

미국과 중국은 지역 순번제를 놓고 벌써 신경전이다. 왕광야 유엔주재 중국대사가 "중국은 아시아 후보만을 지지할 것"이라고 하자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아시아보다는 동유럽이 우선"이라고 받아쳤다.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대사는 "유엔의 역할에 대해 미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견해로 맞서 있다"며 "무엇보다 두 나라의 지지를 얻는 게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 당선 가능성은=출마를 선언하거나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는 10여 명에 이른다. 지역순번제를 의식한 아시아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다. 태국의 수라키앗 사티라타이 부총리가 지난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들의 동의를 얻어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후 자질론 등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를 신경 쓰고 있다. 수라키앗이 낙마하고 고 전 총리가 아세안 단일후보로 나오면 파괴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당선 가능성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해볼 만하니까 출마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김경원 석좌교수는 "다른 후보보다 불리하지는 않다고 본다"며 "다만 국가 이익을 앞세우는 것보다는 세계 평화를 위해 공헌한다는 인물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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