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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노루목’ 잡아라, AI 스피커 노리는 IT 공룡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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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아직 크게 먹을 것 없는 인공지능(AI) 스피커 시장이 왜 이리 뜨거울까. 애플이 5일(현지시간)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연말 출시를 앞둔 ‘홈팟’을 공개하며 AI 스피커 시장에 관심이 또 한번 쏠리고 있다.

음성인식 AI 플랫폼 기술선점 노려 #시장은 작지만 신규진출 경쟁 치열 #현재는 아마존·구글이 판세 주도 #삼성·네이버 등도 틈새 분야 겨냥

올 하반기에만 애플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소프트뱅크·네이버·카카오 등 국내외 업체가 AI 스피커를 내놓을 계획이다.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한 아마존·구글에 이들 업체까지 가세하면 AI 스피커 시장은 ‘정보기술(IT) 공룡의 전쟁터’가 되는 셈이다.

전자 제품으로서 AI 스피커는 그리 사업성 큰 분야가 아니다. 미국 음성분석 기술기업 보이스랩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시장서 팔린 AI 스피커는 570만대에 불과하다. 올해 판매량은 2450만대로 껑충 뛸 전망이지만 여전히 스피커 팔아 크게 남기긴 어렵다. 아마존 ‘에코’와 구글의 ‘구글홈’ 가격이 대당 100달러 대로 저렴하다는 점, 지난해 스마트폰 판매량이 18억8700만대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AI 스피커 시장 규모가 2015년 3억6000만 달러(4000억원)에서 2020년 21억 달러(2조3500억원)로 성장할 거라 전망했다.

성장세는 가파르지만 절대 규모로는 공룡들의 놀이터 감이 아니다. 올해 스마트폰 시장 전망치인 4000억 달러(약 450조원)에는 2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AI 스피커 자체가 오래 갈 모델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의 가족 변화 양상을 감안하면 거실에 놓고 쓰는 가정용 스피커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가 의문”이라며 “실제로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내놓은 가정용 로봇 ‘페퍼’도 유용하게 활용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점점 더 많은 업체가 AI 스피커에 매달리는 건 음성인식 AI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음성인식 AI 플랫폼의 경쟁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어느 플랫폼이 더 말을 잘 알아듣느냐. 둘째, 누가 더 제대로 음성 명령을 이행하느냐. 두 가지 경쟁력를 좌우하는 변수는 한 가지, 데이터다. 어느 플랫폼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했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말을 더 정확하게 알아듣고 지시하는 바를 똑똑하게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진우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 스피커가 갈수록 많은 가전이나 냉난방 등 홈 사물인터넷(IoT) 서비스와 연결되면 소비자들이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스피커를 통해 쌓이게 될 것”이라며 “이런 데이터를 모으는 길목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이 AI 스피커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추세는 스피커 본연의 기능을 강조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이다. 애플의 홈팟은 4인치 우퍼와 하단의 7개 스피커 등으로 가상 서라운드 음향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MS가 올해 중 출시할 AI 스피커 ‘인보크’ 역시 세계 최대 오디오 회사 하만카돈과 손잡고 오디오 사양을 강조할 전망이다.

최형욱 IT 칼럼니스트는 “음성인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기나 오갈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아직 제한적이란 걸 감안하면 음악 감상 기능을 강조하겠다는 애플의 전략이 실효성이 있을 걸로 보인다”며 “4000만곡 이상의 음원을 보유한 ‘애플뮤직’, 애플 특유의 감성 마케팅이 홈팟 판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이 내놓은 AI 스피커는 아직 세계의 주목을 받는 수준은 아니다. 올 하반기에 나올 네이버의 ‘웨이브’ 정도가 기대작이다. 삼성전자도 자체 인공지능 플랫폼인 빅스비가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자사의 스마트폰 및 가전과 연동된 AI 스피커를 출시하지 않겠느냐는 예측이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구글이나 아마존이 이미 평정한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겠다는 것은 무모할지라도 한국의 한류 콘텐트를 활용하면 아시아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가진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 걸로 본다”며 “아직 초창기인 AI 플랫폼 선점을 위해 국내 업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서비스와 제품을 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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