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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시간 부족, 하향식 인선, 단수 후보 … 검증의 칼 무뎌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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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국 민정수석, 박수현 대변인, 조현옥 인사수석(왼쪽부터)이 지난 5일 대통령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했다. 7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연합뉴스]

조국 민정수석, 박수현 대변인, 조현옥 인사수석(왼쪽부터)이 지난 5일 대통령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했다. 7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연합뉴스]

나흘 뒤면 취임 한 달을 맞는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까지 국무회의를 한 번도 주재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6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오찬을 함께하긴 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이 포진한 국무회의에는 나가지 않았다. 헌법상 회의기구인 국무회의가 유명무실한 상황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내 장관’들과만 회의를 원할 경우 현재로선 6월 말이 돼도 국무회의를 개최하기 힘들 수 있다. 조각(組閣)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민정수석실은 진용 못 갖췄고 #인사 비밀주의로 평판 조회 미흡 #청와대 내부 인사위도 구성 안 돼 #18개 부처 중 6명만 인선된 상태 #대통령, 한번도 국무회의 주재 안해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의원 출신 장관 후보자 4명을 지명한 이후 일주일째 장관 인사 발표를 못하고 있다. 국무위원급 18개 부 장관 중 6명만 인선된 상태다. 국무위원이 아닌 장관급인 금융위원장, 권력기관장인 국세청장·검찰총장 등도 손을 못 댔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장관 인사가 늦어지는 데 대해 6일 “어느 때보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아 철저하게 인사검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내정됐던 후보들을 더 높은 기준으로 재검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들처럼 문 대통령 역시 취임 초기 인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대해 청와대 시스템 부재와 문 대통령의 사람 고집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①검증조직 미비=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인사와 관련해 ‘속도’를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청와대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 인사검증 업무를 했던 한 인사는 “청와대에서 가장 먼저 준비됐어야 할 것이 인사검증 조직”이라며 “지금 청와대를 보면 우선순위가 뒤죽박죽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 업무 전반을 관장하는 조현옥 인사수석과 검증을 총괄하는 조국 민정수석을 취임 이튿날인 지난달 11일 임명했다. 하지만 실제 검증 실무를 담당하는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은 엿새 후인 지난달 17일 임명됐다. 게다가 김 비서관은 감사원 출신이어서 인사검증 전문가는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또 검찰·경찰·국세청 등 각 부처에서 파견돼 박근혜 청와대에서부터 근무한 민정수석실 행정관 상당수가 이번 주 교체될 예정이기도 하다. 시간에 쫓기는데 필수인력조차 준비가 안 됐던 셈이다.

②단수추천 가능성=문 대통령은 대선 중 자신을 ‘헤드헌터’라 칭한 적이 있다. “꼭 필요한 사람은 함께 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임명 12일 만에 물러난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2012년 대선 때부터 외교안보 분야의 핵심 측근으로 통했다. “시중에 도는 구설”이 오래전부터 파다했는데도 임명됐던 건 검증 단계에서 사실상 ‘단수 후보’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정비가 안 된 초기에는 아래로 단수(單數)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통령의 명을 받드는 식으로 인사를 추천하고 검증하면 ‘노(no)’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에도 “인사 콘셉트가 먼저 정해진 뒤 거기에 맞춰 검증이 뒤늦게 진행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③지나친 인사 보안=역대 청와대에서 반복된 ‘인사 비밀주의’ 또한 원인으로 꼽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사 문제는 잘못 알려질 경우 파장이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내부에서도 보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평판 조회 등을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내부에선 “제대로 된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수석들을 모두 임명하지 못해 아직 인사위도 구성되지 않았다. 역대 정부는 모두 인사추천회의(노무현), 인사검증위원회(이명박), 인사위원회(박근혜)를 운영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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