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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폴크스바겐에 환경오염 책임 물을 수 없어"... '디젤게이트' 민사 첫 판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배출가스 조작' 논란을 빚은 완성차 업체 폴크스바겐 그룹의 국내 법인에 환경오염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폭스바겐 차주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국내에서 운행한 폴크스바겐 차량이 환경을 오염시켜 건강권이 침해됐다"며 낸 위자료 소송에서다.

차량 소유주 아닌 일반 시민이 낸 소송 #재판부, "생명과 건강 위협할 정도 아니다 " #폴크스바겐 소유주 집단소송은 진행 중

서울중앙지법 민사18단독 배은창 판사는 지난 12일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이하 서민민생위)와 시민 김모(73)씨 등 45명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서민민생위 등은 지난 2015년 11월 "인증시험보다 10~40배 많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차량을 판매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 건강권을 침해당했다"며 "폴크스바겐은 1인당 30만원씩 13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배출가스 조작 차량이 국내에 운행돼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향후 질병 발생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생겼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폴크스바겐 차량 소유주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다. 폴크스바겐 차량을 산 사람도, 탄 사람도 아니지만 '폭스바겐이 오염시킨 공기를 마신 시민'으로서 소송을 낸 것이다.

지난해 8월 환경부의 인증취소 처분으로 판매가 정지된 폭스바겐 차들이 평택 차량점검센터에 세워져 있는 모습. 김현동 기자

지난해 8월 환경부의 인증취소 처분으로 판매가 정지된 폭스바겐 차들이 평택 차량점검센터에 세워져 있는 모습. 김현동 기자

법원은 "폴크스바겐이 다른 차에 비해 생명과 건강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했다고 볼 수 없다"며 시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폴크스바겐 차량이 특별히 과도한 대기오염을 유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차량을 판매한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등은 살펴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화석연료를 연소하는 엔진을 사용하는 자동차에서는 일정량의 대기오염물질이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단순히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수입해 판매한 디젤 차량에서 대기오염물질이 나와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는 것만으로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민사 첫 판결…폴크스바겐 관련 민사·형사·행정 소송 줄이어

이는 '배출가스 조작' 사태 이후 폴크스바겐과 관련해 나온 첫 민사 판결이다. 2015년 9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소프트웨어를 발견하며 일명 '디젤게이트'가 불거진 후 국내서는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한 민사·형사·행정 소송이 진행 중이다.

폭스바겐 재판 관련 일지

2015년  9월  미국 환경보호청 "폭스바겐 저감장치 조작 소프트웨어 발견"
          11월 환경부, 15개 차종 12만5000대 리콜 명령 및 검찰 고발
2016년  6월 폭스바겐 독일 본사, 미국 정부와 17조원 소비자 보상 합의
           8월 환경부, 32개 차종 8만 3000대 인증 취소, 178억원 과징금 부과
          12월 공정위, 폭스바겐의 허위ㆍ과장 광고 적발 373억원 과징금 부과
2017년  1월 법원, 폭스바겐 인증담당 임원에게 징역 1년 6개월 선고
                   검찰, 박동훈 전 사장 등 전현직 임직원 7명 불구속 기소
                   티구안 차주, "환경부의 리콜 승인처분 취소해 달라" 소송 제기
2017년  2월 폭스바겐,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명령 취소해 달라" 소송 제기
                   차주 259명 폭스바겐 상대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첫 변론

검찰은 지난해 2월 폴크스바겐 한국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11개월의 수사 끝에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장, 박동훈 전 폭스바겐코리아사장(현 르노삼성차 사장) 등 전·현직 임직원 7명을 기소했다. 박 전 사장 등에 대한 재판은 지난 4월 13일 시작돼 현재 공판준비절차가 진행 중이다. 서류조작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윤모 이사는 이들보다 먼저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다만 미인증 자동차를 수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러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며 죄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윤 이사와 검찰 측이 모두 항소해 서울고법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폴크스바겐 차량을 구매하거나 장기임대(리스)한 소비자들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소비자를 속여 부당한 이득을 봤다"며 집단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고모씨 등 259명이 이 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첫 변론이 열렸다. 소비자 집단소송은 이 밖에도 수십 건이 진행되고 있다.

2015년 환경부 관계자가 폭스바겐 차량의 리콜 조치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2015년 환경부 관계자가 폭스바겐 차량의 리콜 조치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환경부는 2015년 11월 아우디·폴크스바겐 15개 차종 12만 5000대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렸다. 이 회사는 세 차례 리콜계획서를 제출했지만 모두 부실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지난해 8월 32개 차종 8만 3000대에 대한 차종 인증 취소 처분을 받고난 뒤에야 리콜 이행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담은 네 번째 리콜 계획서를 내 지난 1월 승인됐다. 배출가스 조작 디젤차량 15종 중 첫 리콜 대상이 된 차종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구안' 2종이다.
일부 티구안 차주들은 엉터리 리콜이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크게 감소하지 않았고, 내구성 검증이 부실한데도 환경부가 폭스바겐의 리콜 계획을 승인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환경부장관을 상대로 한 이 소송은 행정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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