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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스크린에 코박고 살텐가… '스마트폰 넥스트' 고민하는 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이 이어폰을 한번 껴보세요.”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한 호텔. 히로히토 콘도 소니 스마트기기 제품기획 총괄이 독특한 모양의 이어폰을 건넸다. 귀에 맞닿는 부분이 가운데 구멍이 난 도넛 모양이다. 이어폰을 착용하니 음악이 잔잔하게 흘렀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저랑 대화하는 게 불편하지 않죠. 이 이어폰은 목소리와 동작을 인식합니다. 전화가 걸려올 때 고개를 끄덕이면 통화를 연결하고, 가로저으면 착신을 거절하는 식이죠. 통화를 할 수 있는 건 기본이고 메신저 내용이나 날씨, 길 안내도 이어폰을 통해 음성으로 알려준답니다.” 이 제품은 일본서 지난해부터 판매 중인 스마트 이어폰 ‘엑스페리아 이어’다.
#지난달 19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페이스북의 개발자 콘퍼런스 ‘F8’에서 가장 주목받은 제품은 ‘스마트 안경’이다. 안경을 끼고 텅 빈 테이블을 바라보면 체스판이 등장한다. 소파에는 실제로는 없는 쿠션이 놓여있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컨셉트의 제품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친구와 체스를 둘 땐 직접 만날 필요 없이 AR 안경을 쓰면 가상의 체스판이 등장하고, 그림을 보고 싶을 때도 AR 안경만 쓰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제품들의 공통점은 뭘까. 스마트폰을 넘어선 소통 방식을 제안하는 기기란 점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스마트폰 넥스트’에 힘을 쏟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의 한계를 넘어선 소통 방식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실리콘밸리 IT 공룡들의 개발자 회의에선 유독 AR 기술이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17일 열린 구글의 개발자 회의에서 순다르 피차이 CEO는 AR이 인공지능(AI)과 만나면 어떤 서비스가 가능한지 선보였다. ‘구글 렌즈’를 통해서다. 구글 렌즈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특정 사물을 비추면 그 사물의 정보를 함께 보여준다. 식당 간판을 비추면 식당의 메뉴와 식당에 대한 평가가 나타나며, 상품을 비추면 쇼핑몰이 연결되는 식이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미 공개된 AR 기기 구글 글래스가 이 기술을 만나면 얼마나 큰 효용을 가져다주겠느냐"며 "디스플레이를 들여다볼 필요없이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강현실과 음성인식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언제까지 스마트폰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미국의 IT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마크 주커버그를 인용해 “증강현실 기술로 우리 주변이 온통 디스플레이처럼 보인다면 TV 같은 물리적 디스플레이는 결국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런 구상이 속속 소개되는 이유는 스마트폰의 등장 10년 만에 ‘스마트폰의 한계’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물리적 디스플레이는 아무리 커져도 6인치 수준이다. 영화를 실감나게 보거나 게임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할 순 없다. 스크린을 들여다보느라 주변 환경을 즐기거나 가족ㆍ친구와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정구민 교수는 “안경이나 시계, 이어폰처럼 더 간편하게 몸에 지닐 수 있는 형태, 물리적 화면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능 등이 부각되는 건 그래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거란 전망이다. 지난해 개발자 버전이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MS)의 AR기기 ‘홀로렌즈’를 보면 알 수 있다. MS는 홀로렌즈를 통해 가상의 제품을 디자인하고, 서로 곁에 있는 것처럼 시야를 공유하며 대화하고, 현실과 가상 이미지가 결합된 게임을 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실에선 지나치게 비싼 기기 가격(대당 3000달러, 330만원)와 콘텐트의 부족이 한계로 지적됐다.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공상 영화처럼 스크린 대신 허공에 뜨는 홀로그램 이미지로 소통하는 방식이 궁극적인 진화 방향임은 확실하다”면서도 “콘텐트 제작·전송 기술을 감안하면 10년 안에 상용화되긴 힘들다”고 말했다.
무선 이어폰이나 안경 등의 웨어러블 기기가 스마트폰처럼 널리 확산될 지도 의문이다. 최형욱 IT칼럼니스트는 “스마트와치만 해도 몸에 걸치는 걸 귀찮아 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시장이 좀처럼 확대되지 않는데, 안경과 이어폰을 늘상 착용할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 칼럼니스트는 그러면서도 “소통의 방식이 더 다양해져야 한다는 문제 의식은 모든 IT 기업들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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