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이기주의에 '市政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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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강남의 C 아파트는 지은 지 23년이 지난 11~12층짜리다. 주민들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당연히 시세차익이 많은 13층 이상을 원했다. 강남구도 주민 의견을 의식해 지난 6월 고층으로 용도를 바꿔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다. 그러나 시는 " 마구잡이 개발을 허용할 수 없다"며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일반 주거지역을 지역 특성에 맞게 층수를 제한해 개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서울시의 '일반주거지역 종(種) 세분화'가 시와 자치구, 주민들의 이해에 얽혀 두달째 표류하고 있다.

당초 2000년 7월 개정된 도시계획법(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대로라면 시는 지난 6월 말까지 일반주거지역을 ▶1종(구릉지, 용적률 1백50% 이하, 4층 이하) ▶2종(중저층 주택지역, 2백% 이하, 7~12층) ▶3종(역세권.간선도로변, 2백50% 이하, 층수제한 없음)으로 세분한 뒤 지난 7월부터 적용했어야 한다.

그러나 시는 그동안 네차례나 여러 구청에서 제출한 세분화 결정 요청안을 놓고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었으나 결말을 짓지 못했다. 재건축.재개발 지역 주민과 구청의 거센 반발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1일부터 서울시내 모든 일반주거지역은 자동으로 2종으로 간주되면서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얼어붙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 업자들이 종 세분화 결정권자인 도시계획위원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위원회는 시 공무원과 교수.시민단체 대표 등 24명으로 구성돼 있다.

◆층수 높이기 경쟁=구청 자체 심의가 늦어져 이번에 심의 대상에서 빠진 양천구를 제외한 24개 구청 대부분이 시가 내려보낸 종별 세분화 기준안(매뉴얼)보다 최고 두배 이상 용적률을 높여 심의요청안을 제출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지역이나 개발이 예상되는 낙후지역은 대부분 3종으로 신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구의 경우 당초 시 기준안대로라면 3종이 47.3%여야 한다. 그러나 개포 단독주택지역(2종)을 3종으로 바꾸는 등 3종 비율이 자치구 중 가장 높은 62.5%에 이른다. 3종비율이 그 다음으로 높은 구는 ▶노원(60.4%) ▶강동(48.6%) ▶송파(46.3%) ▶ 서초(42.3%)구 순이었다.

강남구 관계자는 "시가 지역 개발계획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인 기준안을 내려보내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강남.송파.강동.서초 등 '강남권 빅4'는 3종 비율이 당초 시 기준안(39.1%)보다 10.8%포인트나 높은 49.9%로 올려서 요청했다. 강동구는 재건축 대상인 고덕.둔촌지구를 3종으로 높여 결정을 요청했다.

반면 성동구만이 유일하게 시 기준안(20.3%)과 구 요청안이 같았고, 종로구가 10.5%로 가장 비율이 낮았다.

◆형평성 시비=강북지역 주민들은 또 차별을 받고 있다며 불만이다. 강남권은 3종이 전체의 절반이나 되는데 강북 지역은 30%도 안돼 지역불균형이 커질 거란 얘기다.

강북구 관계자는 "현재도 북한산 국립공원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며 "삼양로와 도봉로 등 간선도로 주변은 개발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용적률을 높인 곳에 대해서는 당초 기준안대로 다시 하향 조정, 결정한다는 게 시의 기본입장이다. 원칙을 흔들면 민원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시 송득범(宋得範)도시계획과장은 "재산권이 걸려 있는 민감한 사안이므로 일단 이해관계가 덜한 곳부터 먼저 결정하는 등 신중하게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는 오는 22일 도시계획위원회를 다시 열어 종 세분화안을 재심의한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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