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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안아 준 것 같은 …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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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30면

소통 카페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은 왜 존재해야 할까. 누구나 한마디쯤은 할 수 있지만 본격적인 설명은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더 모호했다. 정책보다는 이념이나 이익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면 점령군처럼 입맛대로 설정하고 강변해 온 탓이다. 그러는 사이 방황하는 국가와 전횡하는 대통령은 국민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되었다. '자주 보지 못하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을 생각하면 국가도 대통령도 국민도 모두 불행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고 자란 딸아이가 37살 성인이 되어 지난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울먹이며 추모사를 했다. 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난 자신을 보러 근무지인 완도에서 광주에 왔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픔을 토로했다. 아버지 김재평씨는 당시 29세. 푸른 하늘, 푸른 산 같은 푸르른 시기였다.

“만약 제가 그때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와 엄마는 지금도 참 행복하게 살아 계셨을 텐데. 아버지, 당신이 제게 사랑이었음을.

당신을 비롯한 37년 전의 모든 아버지들이 우리가 행복하게 걸어갈 내일의 밝은 길을 열어 주셨음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낭독을 마친 딸이 연단을 떠났다. 그때였다. 청중석에서 눈물을 훔치던 문재인 대통령이 그녀를 20m쯤 따라가 안아 주며 “울지 마시고 기념식이 끝나고 아버지 묘소에 참배하러 가자”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온 것처럼, 아버지가 안아 준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고 했다.

떠나가는 37살의 딸을 안아 주는 대통령의 비언어 행위는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상대를 안는다는 것은 상대와의 거리를 제로인 0cm로 만드는 터치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제로 공간(zero-proximity)은 경계나 배타가 사라지고 가족, 친구, 어린 아이와 공유하는 친밀한 공간이다(『The silent language』, 에드워드 홀). 연단을 떠나는 국민을 끈기 있게 따라가서 안아 주는 대통령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대통령의 집무실을 비서들이 근무하는 청와대 여민관에 설치하고 광화문에도 마련한다는 발표는 국민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물론이고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소통 노력이다. 이 초심을 임기 내내 일관해 권력과 집권을 향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향해서 눈·귀·손·발·얼굴·몸 등 모든 심신을 활짝 열어 놓기 바란다.

국가와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태산같이 많을 것이지만 세상살이에 힘든 국민을 따뜻하고 기분 좋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리라. 경제 문제 해결, 강대국에 둘러싸여 바람 잘 날 없는 외교, 북한 정권과의 핵문제, 비뚤어진 정치검사들의 ‘관행’이라는 후안무치를 척결하는 문제, 적폐청산 못지않게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고 훈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국민과의 소통은 대통령의 최고 권한이자 책임이고 자산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희로애락에 함께하는 소통은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내 편과 네 편으로 국민을 나누는 협량한 정치꾼들 따위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진정한 통합의 세상을 일구는 길이다. 광주에서의 소통이 그곳에서 멈추지 말고 대한민국 방방곡곡과 모든 국민 곁으로 다가가기 바란다. 대통령의 주요 일상에 소통이 자리하고, 국민통합의 바탕이 소통임을 대통령이 변함없이 보여 준다면, 마침내 소통은 수단을 넘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윤리와 도덕이 될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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