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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병아리 검사를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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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사회2부 부데스크

김승현사회2부 부데스크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잖아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검찰 고위직 인사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검찰총장에 이어 법무부 차관, 대검 차장 등이 잇따라 사표를 낸 직후였다. “무슨 말을 해도 욕을 먹을 것 같다”며 말을 아끼는 그의 판단이 틀린 것 같지 않았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직역하면 “안쪽과 바깥쪽에서 함께 알을 쫀다”는 의미다. 깨달음의 이치를 담은 불교계의 화두다. 안쪽의 병아리가 쪼는 것이 줄(啐), 바깥쪽 어미 닭이 쪼는 것은 탁(啄)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드라이브가 ‘탁’이라면, ‘줄’은 검찰의 자발적인 동력일 것이다. 그는 ‘검찰을 적폐로 규정해서 궁지로 내몰기보다는 정부와 검찰이 함께 소통하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2100명이 조금 넘는 대한민국 검사 상당수는 지금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 있다. 초유의 지휘부 공백은 오히려 별문제가 아니다. 엘리트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믿고 따랐던 가치들이 ‘한심한 작태’가 됐다. 서울대(38.5%)·고려대(18.9%)·연세대(11.6%) 출신이 69%에 달하는 영재 집단은 ‘헛똑똑이 무리’로 전락했다. "이러려고 밤샘 근무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한 부장검사의 말도 이해가 된다. 불법 집단을 제외하고 이처럼 만신창이로 비판받은 조직이 있었을까. 그만큼 새 대통령과 그를 탄생시킨 국민들의 불신은 깊다.

그런데 추락의 끝은 아직 멀어 보인다. 이 시대가 일반인의 능력치를 넘어서는 반성을 검사들에게 요구하고 있어서다. ‘구도(求道)의 자세’에 가까운 새 출발을 바란다. 새로운 권력의 방법상 흠결을 따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바람이다.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있어 더 정의로워져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고 진단한 대로다.

영화 ‘매트릭스’의 도입부에서처럼 가혹하게 검사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 니오(키아누 리브스)가 안온했던 앤더슨의 삶을 내던지는 장면이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계의 저항군 모피어스(로런스 피시번)의 제안과 국민들의 목소리는 닮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세상이 잘못됐다는 걸 느껴 왔어.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네가 노예라는 진실. 파란 약을 먹으면 침대에서 깨어나 네가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빨간 약을 먹으면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된다.”

이쯤 되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첫 부분이 떠오를 수도 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 했다”면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자아를 찾아 떠난다. 그 여정에서 명문이 탄생하는데 줄탁동시의 깨우침과 비슷하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검찰 불신의 시대에 대한 답은 검사들에게 있다.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햇병아리 자신이다.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