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깜빡 잊는 일 늘어난다면 이것 ‘의심’해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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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주부 한지수(63·가명)씨의 고민은 시어머니의 치매다. 몇 년 전만해도 기억력·인지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열쇠나 리모컨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 집안을 뒤지거나 거스름돈 계산을 틀리는 정도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집안 식구를 깨우더니 ‘여기가 어디냐’고 난리를 쳤다. 그날 이후부터 아들·며느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상태가 더 나빠져 밤이건 낮이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대소변을 못가리는 등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워졌다. 결국 병원을 찾아 치매 집중치료를 시작했지만 이전 상태로 회복이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치매 유발물질 쌓여 소리없이 서서히 뇌 세포 파괴

나이를 먹으면 피부에 주름이 생기듯 뇌도 늙는다. 치매는 소리없이 뇌를 잠식한다. 뇌세포가 파괴돼 인지기능이 서서히 떨어진다. 혀끝에서 단어가 맴돌아 말이 어눌해지고, 상황을 기억·이해·판단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느려진다.

문제는 그 이후다. 어느 병이나 그렇듯이 치매도 한 번 증상이 나빠지면 되돌리기 힘들다. 뇌 인지 기능이 떨어져 혼자 어떤 일을 하기 어려워진다. 예컨대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거나 스스로 밥을 챙겨먹기 어려워 한다. 옷을 갈아입고 산책하는 단순한 일상생활조차 힘들어하는 식이다. 병이 더 진행되면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한다. 외출을 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경우도 늘어난다. 정신적으로도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망상·환각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뇌세포가 망가져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다.

건강상태도 나빠진다. 예를 들어 양치질을 못하게 됐다고 가정하자. 옆에서 대신 이를 닦아줘도 제대로 치아를 관리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치주병이 생기고, 치아가 손실되면 음식을 먹지 못한다. 영양부족 상태가 건강이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떨어지면 마치 아기처럼 옆에서 계속 돌봐줘야 한다. 당사자는 물론 보호자의 삶의 질도 함께 떨어진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이현 교수는 “치매는 부끄럽다고 숨길수록 치료가 어려워진다”며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관리하면 치매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치매 초기에 진단·치료하면 일상생활 가능

사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무려 25년 전부터 발병 징조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08년 국제치매연구조직인 다이안(DIAN)은 미국·영국·호주의 가족성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치매 유전자가 있는 사람은 이미 증상 발현 25년 전부터 뇌척수액에 변화가 나타났다.

예컨대 75세에 치매 증상이 나타났다면 50대 초·중반부터 ‘치매의 싹’이 자라고 있다는 의미다. 치매의 싹을 없애기 위해서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뇌 관리를 시작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치매로 발전할 확률이 10배 이상 높아진다.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중증 치매로 악화하기 쉽다는 의미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은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다. 이중 10~15%는 치매로 진행한다. 이 교수는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참고로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진단하지 않는다. 본인은 물론 가족·지인을 대상으로 상세한 인터뷰와 신경인지기능 검사, 치매 선별검사 등을 진행한 다음 이를 토대로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찍 치료할수록 증상의 심각성을 줄일 수 있다. 의료비 부담 역시 마찬가지다. 치매는 병이 악화 할수록 감당해야 하는 의료비와 부대비용이 늘어난다. 경증일 때와 비교해 중증은 의료비가 9배 높다는 보고도 있다. 이 교수는 “치매는 조기치료가 중요하다”며 “초기에 진단·치료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 간병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Tip. 이럴 때 초기 치매 의심하세요

기억력 장애: 최근 일어난 사건이나 만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언어능력 감퇴: 주변 사람의 이름이나 사물의 명칭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
시간개념 저하: 시간의 흐름에 둔감하고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
성격 변화: 별 것 아닌 일에 예민해져 짜증을 잘 낸다.
일상수행능력 저하: 세탁기·믹서기 등 평소 잘 이용했던 제품의 사용법을 몰라 쩔쩔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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