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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유쾌한 ‘옴 파탈’ … 그는 제임스 본드 그 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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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가장 오랫동안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며 ‘007 캐릭터’의 매력을 완성한 배우 로저 무어. [AP=연합뉴스]

가장 오랫동안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며 ‘007 캐릭터’의 매력을 완성한 배우 로저 무어. [AP=연합뉴스]

숀 코너리, 조지 라젠비, 로저 무어, 티모시 돌턴, 피어스 브로스넌 그리고 대니얼 크레이그.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007 시리즈’의 여섯 히어로 중 한 명인 로저 무어가 세상을 떠났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본드의 죽음’은 낯설다. 특히 부고 기사의 주인공이 로저 무어라는 사실은, 반 세기 이상 사랑 받고 있는 본드 무비의 연대기에서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오랫동안 제임스 본드였던 배우, 로저 무어. 그의 영화 인생에서 본드라는 캐릭터는 절대적이었고, 숀 코너리가 시작한 이 캐릭터는 무어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었다.

로저 무어가 남긴 ‘007 문화 코드’ #숀 코너리 이어 46세에 3대 본드로 #버번 위스키에 시가, 재치와 유머 #12년간 7편 … 10억 달러 수익 올려

시리즈의 첫 영화 ‘살인번호’(1962. 테렌스 영 감독)를 기획 중이던 프로듀서인 앨버트 R. 브로콜리와 해리 솔츠먼의 가장 큰 과제는 “누가 첫 번째 본드가 될 것인가”였다. 수많은 배우가 물망에 올랐다. 앨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의 캐리 그랜트, 전형적인 영국 신사 데이비드 니븐을 비롯 웬만한 30~40대 남자 배우들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그 중엔 로저 무어도 있었다. 기회는 큰 키에 마초 스타일인 숀 코너리에게 갔다. 사실 그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 속 본드에 비해 거친 느낌이었지만 영화를 본 후 원작자는 “완벽한 캐스팅”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여유 있으면서도 강인하고, 때론 잔혹하면서도 농담을 던질 줄 하는 ‘옴 파탈’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는 숀 코너리에 의해 정립되었고 큰 인기를 끌었다.

‘007 시리즈’가 맞이한 첫 위기의 원인이 숀 코너리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코너리는 자신의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고 ‘두 번 산다’(1967. 루이스 길버트 감독)를 마치고 하차를 선언한다. 제작자는 고민에 휩싸였다. “누가 두 번째 본드가 될 것인가” 호주 출신의 모델 조지 라젠비는 데뷔작 ‘007과 여왕’(1969. 피터 R. 헌트 감독)에서 본드가 되는 영광을 안았지만 뭔가 부족했고, 결국 코너리는 제작진의 간곡한 부탁과 파격적인 개런티로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 가이 해밀턴 감독)로 돌아왔지만 임시방편이었다.

이때 등장한 ‘3대 본드’ 로저 무어는 ‘신의 한 수’였다. 사실 무어는 이전에 본드가 될 수 있었지만, 당시 잘 나가던 TV 스타였던 그는 언제나 일정 문제로 발목을 잡혔다. TV 시리즈 ‘세인트’(1962~69)와 ‘위장 게임’(The Persuaders!. 1971~72) 때문에 ‘007과 여왕’과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놓쳤던 것. 운명이었는지 그는 결국 ‘죽느냐 사느냐’(1973. 가이 해밀턴 감독)로 세 번째 본드가 되었다. 그의 나이 46세였으니, 액션 히어로로선 은퇴할 나이에 무어는 비로소 시작한 셈이다.

이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 가이 해밀턴 감독)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 루이스 길버트) ‘문레이커’(1979. 루이스 길버트) ‘포 유어 아이즈 온리’(1981. 존 글렌) ‘옥토퍼시’(1983. 존 글렌) 그리고 58세에 찍은 ‘뷰 투 어 킬’(1985. 존 글렌)까지 12년 동안 7편을 찍으며 그는 본드 역에 장기집권 한다. 여기서 그의 업적을 단지 숫자로만 환산할 순 없다. 그는 본드 캐릭터의 본질을 바꾸어놓았다. 코너리가 원석을 캐냈다면 그것을 세공해 윤기가 흐르도록 만든 사람은 로저 무어였고, 그런 점에서 코너리는 무어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본드”라고 치켜 세웠으며, 원작 소설의 본드와도 매우 가까운 이미지였다.

‘죽느냐 사느냐’의 가이 해밀턴 감독은 무어에게 “코너리를 연상시키는 그 어떤 행동도 해선 안 된다”고 주문했는데 이 전략은 주효했다. 그는 마티니가 아닌 버번 위스키를 마셨고, 담배보다는 시가를 피웠다. 완력보다는 재치를 선택했고, 거친 섹시함보다는 유머 있는 젠틀함으로 승부했다. 이로서 본드의 계보는 대니얼 크레이그 같은 ‘코너리 계’와 피어스 브로스넌 같은 ‘무어 계’로 나뉘게 되었고, 두 스타일의 결합을 통해 비로소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의 총체적인 매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0여 년 동안 로저 무어는 ‘007 시리즈’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본드 걸과의 로맨스가 부각되었고, 그의 부족한 액션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무기와 탈것들의 변화와 발전도 놀라웠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1960년대의 ‘본드 마니아’들은 점점 사라졌다. 전 세계의 영화 문화는 엔터테인먼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고, 할리우드에선 블록버스터가 등장했다. 본드 무비 역시 변해야 했고, 숀 코너리와는 사뭇 다른 본드가 필요했으며, 로저 무어는 시리즈의 이행기에 등장해 시대적 임무를 완벽하게 완성했던 인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본드라는 캐릭터를 다시 정의했고, 그의 ‘위대한 유산’은 이후 수많은 스파이 캐릭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무어 시기 시리즈는 해저나 우주 등으로 공간을 확장하며 영국적 색채를 벗고 상업적 성격을 강화했다. 그 결과는 대단했다. 무어가 본드로 출연한 7편의 영화는 12년 동안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다.

로저 무어는 현장에서도 매우 친숙하고 상냥한 인물로 유명했고, 제작자 브로콜리와 항상 주사위 게임과 농담을 즐기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본드가 연성화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무어는 가장 자신에게 어울리는 본드 이미지를 만든 것은 분명하며 대중은 코너리와는 다른 매력의 ‘무어의 본드’ 역시 사랑했다. 본드 역을 그만 둔 후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렇다 할 작품이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만큼 그에게 있어 ‘007 시리즈’는 배우 그 자체였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대니얼 크레이그의 본드 무비에 로저 무어가 악당으로 등장할 거라는 루머가 끊임없이 돌았지만, 이젠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편히 쉬시길 무어 경, 그리고 가장 부드럽고 유쾌했던 제임스, 제임스 본드.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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