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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기일…하루 앞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

중앙일보

입력

37년 전 오늘인 1980년 5월 24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형이 집행됐다. 1979년 10월 26일 박선호·박흥주 등과 함께 궁정동 안가에서 박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살해했다. 이틀 뒤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에 의해 체포된 김 부장은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김 부장은 군사재판에서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 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이날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진 중앙포토]

[사진 중앙포토]

당시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살해 동기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라고 진술을 남겼다. 그는 신군부 쿠데타 직후인 1980년 5월 20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됐고, 4일 만인 5월 24일에 교수형에 처했다.

김 부장은 박정희의 고향(경북 구미) 후배이자 육사 동기(2기)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유신정권의 핵심 인물에서 박정희 저격 이후 ‘대역죄인’으로 낙인 찍혔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온라인상에서 누군가 김 부장의 묘소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됐다. 국정농단 핵심인물인 최순실(61)씨의 친부인 최태민의 비리, 최태민과 당시 큰 영애(박근혜)의 관계 등에 대해 김재규 부장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일화가 화제 된 직후였다. 김 부장은 박정희 저격 이후 체포된 뒤 항소 이유보충서에서 이 같은 내용을 일부 진술하기도 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김 부장 묘소 사진을 적극 퍼나르고 있다. 이들은“이번 기회에 김재규 부장의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명예회복의 길은 아직 녹록치 않아 보인다. 80년 대법원 선고 이전부터 김 부장의 구명운동을 벌여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재야인사 등은 김재규 재평가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문민정부(김영삼)는 물론 국민의 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 때도 내란목적살인죄를 벗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김재규의 기일에 하루 앞서 박근헤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열렸다. 대한민국 권력 정점에 있던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 대통령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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