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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연구소 리포트] 수출 증가, 금융 안정 ‘산뜻한 출발’ … 내수 회복이 관건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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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몇 주 전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세계 경제의 회복’을 표지기사로 선정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와 신흥국 모두가 2010년 이후 최초로 동시에 경기 회복세를 보이며 이는 지난 10여년간 수차례 반복되었던 ‘가짜 회복’, 즉 연초에 낙관론이 대두했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던 경험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기업의 주문, 생산, 출하와 재고 등의 현황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PMI(구매관리자 지수)의 움직임을 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상승세를 보인다. 이는 원자재가격의 하락으로 큰 타격을 받았던 브라질과 러시아 등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리스크에도 세계 경제 회복 #한국 수출액 6개월 연속 상승세 #반도체·석유화학 부문 쏠림은 문제 #고용효과 적어 민간소비 안 살아나 #주택 적기 공급으로 주거비 낮추고 #노후대비 부담 덜어 소비 유도해야

지난해 11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또는 올해 연초까지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정책과 정치의 영역에서 도사리고 있는 불확실성과 불안 요인들이 세계 경제의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세계교역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고, 올해 줄줄이 예정된 유럽 주요국의 선거 일정에서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들이 득세하면서 정치 불안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회복세와 더불어 이러한 세계 경제의 하방 위험들은 시야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철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선언 정도만 현실화됐으며, 얼마 전 트럼프케어의 무산 등으로 정책추진력이 약화한다는 지적마저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환율조작국 지정 등을 무기로 한 대중국 무역갈등 우려 역시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국을 활용하려는 미국의 외교전술로 인해 더 멀어진 양상이다.

유럽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브렉시트 추진이 실물경제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며칠 전 프랑스의 대선에서도 중도파인 마크롱 후보가 당선됐다. 물론 EU체제, 유로화 체제의 근저에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향후 유럽통합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당분간 유럽의 정치사회적 분열이 가속화하면서 경기회복을 저해할 가능성은 작아지고 있는 상황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대외여건의 호전을 배경으로 우리 수출도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월별 수출금액이 5년 만에 6개월 연속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원자재가격의 안정에 힘입은 수출단가의 개선 뿐만 아니라 수출물량의 증가세도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석유제품과 반도체 및 석유화학 등의 일부 품목들이 수출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는 한계는 있으나,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나 통상압력으로 인해 수출이 크게 타격받을 것이라는 우려는 연초보다 점차 약화되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경우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라는 변수로 인해 대중국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중국 수출에는 중국이 대체하기 어려운 중간재와 자본재의 비중이 90%를 상회해 중국의 사드 관련 보복은 일부 내수·소비재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수출만 양호한 것이 아니라 우리 금융시장도 안정적인 모습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현재 전망대로 올해 추가로 두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한은 금통위가 올해 내내 기준금리를 동결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말에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되거나 환율이 급등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경기회복에 따른 기업실적 개선 기대로 외국인투자자들의 주식순매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과 신용등급이 양호하고, 경상수지가 안정적으로 흑자를 내는 상황에서 급격한 자본유출을 초래할 정도의 환율급등을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다.

국내경제의 또다른 걱정거리이던 주택시장의 현황도 우려보다 양호하다. 지난 수년간의 주택경기 호황 이후 공급과잉 우려 등으로 주택경기가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각에서 제기되어 왔으나 주택가격은 일부 지방에서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견조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신규분양 급증 등을 고려할 때 향후 예정된 대규모의 입주물량이 주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2011~2013년의 공급공백을 감안할 때 중장기적 시야에서 보면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평가된다. 오히려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노후주택의 재건축 등에 따른 멸실수요를 감안할 때 주택가격의 추가상승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해외경제의 여건과 우리 수출환경, 그리고 국내 금융시장과 주택시장의 상황은 당초 우려에 비해서는 양호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날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수년 전부터 구조화되고 있는 민간소비의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출의 호조가 가계소득의 증가와 소비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며, 최근 수출증가를 견인하고 있는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의 부문들이 특히 고용유발 효과가 낮다는 점도 문제다. 이는 수출 등의 개선이 가계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기 어려움을 의미하는데, 또다른 문제는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소비가 그만큼 증가하지 못하는 현상, 즉 소비성향의 하락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임일섭우리금융경영연구소 실장

임일섭우리금융경영연구소 실장

여기에는 주거비와 노후대비 부담의 증가, 가계부채 상환 부담의 증가 등 우리 내수의 개선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낯설지 않은 문제들이며, 해결책 역시 기상천외하고 새로운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주택수요의 변화에 조응하는 적절한 주택공급을 통한 주거비 부담의 완화, 노후대비라는 현실적 필요가 가계의 과도한 저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정책기조의 확립, 또한 레버리징과 디레버리징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가계부채 대책의 지속적 추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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