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스타일] 자작나무·들꽃·강아지 … 북유럽 자연을 고스란히 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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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동물, 식물의 이미지를 옷에 프린트하는 이바나 헬싱키. [사진 이바나 헬싱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남아 있는 동물, 식물의 이미지를 옷에 프린트하는 이바나 헬싱키.[사진 이바나 헬싱키]

가구로 익숙했던 북유럽 스타일이 이젠 인테리어를 넘어 패션에까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스웨덴 SPA 브랜드 H&M부터 아크네·코스·마리메꼬·필그림 등 북유럽 브랜드들이 국내에 둥지를 틀더니 지난 4월엔 핀란드 패션 브랜드 7개를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캐릭터 무민과 자작나무 가구로만 친숙했던 핀란드의 패션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현장을 찾아가 봤다.

환경 친화적 핀란드 패션 #춥고 긴 겨울의 우중충함 이겨낼 #화려한 컬러·문양 과감히 새겨 #리넨·메리노울 등 천연 소재 사용 #제작 공정이 윤리적인가도 따져

지난 4월 20~22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전시 공간 어라운드 스튜디오에서는 핀란드 리빙·패션 브랜드를 소개하는 핀란드 라이프스타일&디자인 페어가 열렸다.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이바나 헬싱키와 포멀 프라이데이 등 핀란드 패션 브랜드 7개와 아리카·페더 등 리빙 브랜드 12개가 소개됐다. 가구·리빙용품이야 국내에서 이미 유행한 북유럽풍 인테리어 덕분에 익숙하지만 핀란드 패션은 지금까지 마리메꼬 정도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자연을 패턴화한 프린트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동물, 식물의 이미지를 옷에 프린트하는 이바나 헬싱키. [사진 이바나 헬싱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남아 있는 동물, 식물의 이미지를 옷에 프린트하는 이바나 헬싱키.[사진 이바나 헬싱키]

핀란드 패션은 자연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가구를 만들 때 핀란드에서 자란 자작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것처럼 패션에도 리넨·메리노울·모피 등 천연 소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식물과 풍경 등 핀란드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다.

자연을 담아내는 방법에도 핀란드만의 특징이 있다. 핀란드 유명 스트리트 패션 사진작가인 리사 요키넨이 그의 책 『핀란드 디자인(Finnish Design)』에서 핀란드 패션의 특징으로 꼽은 것은 “화려한 컬러 매치”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이미지를 다양한 컬러로 화려하고 과감하게 옷에 새긴다. 이유는 혹독할 만큼 추운 겨울 때문이다. 요키넨은 이 책에서 “겨울이 길어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 보니 어둠을 밝혀줄 화려한 컬러를 좋아하고 즐겨 입게 됐다”고 설명한다. 마리메꼬의 핑크나 빨간색의 화려한 프린트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핀란드 브랜드 ‘미시파리미’의 모자와 ‘마리타 후리나이넨’의 자작나무 구두.

핀란드 브랜드 ‘미시파리미’의 모자와 ‘마리타 후리나이넨’의 자작나무 구두.

최근 핀란드에서 독특한 디자인과 윤리적 패션 콘셉트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마리타 후리나이넨은 이 다채로운 컬러의 향연을 제대로 보여준다. 청록·오렌지·노란색이 화려하게 새겨진 원피스와 재킷 등을 주로 선보이는데 이들은 모두 핀란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들이다. 여기에 자작나무를 인체공학적으로 깎아 만든 구두를 함께 신도록 제안해 ‘자연’의 이미지를 더했다.

국내엔 아직 생소하지만 유니클로·코카콜라·캐논 등과 협업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바나 헬싱키는 자연을 아름답게 패턴화한 프린트로 새긴다. 디자이너 파올라 이바나 수호넨은 매년 5~8종류의 프린트 테마를 내놓는데, 그 모티프가 되는 게 핀란드의 동식물이다. 그의 언니이자 브랜드의 공동대표인 피르조 슈호넨은 “모든 상품의 디자인은 어렸을 때 기억과 추억을 기반으로 한다”며 “우리가 자라면서 보아온 핀란드의 자연이 소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바나 헬싱키 옷에는 여름 휴가용 별장에서 바라본 자작나무 숲의 풍경이나 어린 시절 엄마가 말리던 꽃과 풀이 문양으로 등장한다.

패션의 세 가지 키워드, 실험·실용·윤리

천연 소재를 사용하되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북유럽 특유의 디자인 특징을 잘 살린 것 또한 핀란드 패션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에서 생산한 메리노울을 소재로 사용하되 다양한 실험과 가공을 통해 면보다 더 관리가 편한 티셔츠와 재킷을 만들어낸다든지, 특별한 직조 방법으로 무게를 줄인 확 줄인 초경량 모피 코트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핀란드 패션 브랜드 마리타 후리나이넨. 컬러를 다양하고 화려하게 사용했다. [사진 마리타 후리나이넨]

핀란드 패션 브랜드 마리타 후리나이넨. 컬러를 다양하고 화려하게 사용했다. [사진 마리타 후리나이넨]

메리노울을 사용해 매끈하고 얇은 티셔츠부터 밀리터리풍 재킷까지 다양한 종류의 남성복을 만들고 있는 포멀 프라이데이의 토니 테르빌라 대표는 “SPA 브랜드에서 산 티셔츠는 한두 번만 세탁해도 모양이 틀어져서 버린 경험이 많은데 이건 환경에도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익스트림 스포츠 브랜드에서 의류에 메리노울을 사용하는 걸 알게 된 그는 “메리노울에 다양한 가공을 해 친환경적이고 기능적이면서 또 세련된 디자인의 옷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핀란드 디자이너가 패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또 있다. 바로 옷의 재료를 얻고 만드는 과정이 윤리적인가에 대해서다. 김윤미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대표는 “핀란드 사람들은 환경과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지켜야 한다는 윤리적인 사명감이 깊이 각인돼 있다”며 “이는 패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옷의 재료가 되는 원단을 얻을 때나 상품을 생산하는 모든 과정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게 모피다. 흔히 모피라고 하면 ‘친자연’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동물 개체수 관리를 위해 사냥을 허가하고 있는 핀란드는 이를 통해 얻어지는 것과 식용 고기를 얻기 위한 도축으로 얻어지는 모피만을 사용해 의류 제품을 만든다.

윤리적 공정은 지역 주민과의 공생으로도 이어진다. 모자 브랜드 ‘미시파리미’는 창업자인 아오이아이넨 가족 농장에서 기른 양의 털로 7명의 동네 할머니가 손으로 뜬 손뜨개 모자를 만드는데, 핀란드를 넘어 유럽에서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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