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혹떼려다 혹 붙인 SK...석유공사와 5번 재판 끝에 46억 더 물어낼 처지

중앙일보

입력

188억원의 석유수입 부과금 환급금을 두고 SK에너지와 한국석유공사가 벌인 11년간의 법정 다툼이 대법원을 두 번이나 오간 5차례 재판 끝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SK에너지와 석유공사가 재상고한 석유수입부과금 환급금 환수 처분 취소 사건의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양측의 분쟁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에너지로고

SK에너지로고

SK에너지는 2001년 8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자체 시설인 울산석유화학단지에 연료용 중유 16억여 리터를 공급했다. 석유공사는 해당 수입 물량에 대해 SK가 납부한 석유수입 부과금 188억원을 환급했다. 정부는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석유 수입‧판매업자로부터 석유제품의 수입‧판매량에 따라 일정 금액의 부과금을 징수하는데, 수입업자가 이를 전기사업자에게 발전 또는 일반전기사업용으로 공급하는 경우 부과금을 환급해주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은 SK가 수입한 중유가 울산석유화학단지에서 자가 발전용으로 사용됐고 제3자에게 공급한 게 아니라며 환급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석유공사는 2006년 10월 이미 환급한 188억원을 환수 조치했다. SK에너지는 정당하게 돌려받은 환급금이라며 같은 해에 소송을 냈다.

1심은 석유공사가 환수한 188억원 중 40억원만 환수 대상으로 인정했다. SK로선 148억원은 돌려줄 필요가 없게 됐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5년)를 감안해 소멸시효가 완성된 46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142억원을 환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석유공사가 환수 처분을 결정한 2006년 10월로부터 5년 이전인 2001년 10월 이전의 환급금에 대해서는 징수권이 소멸됐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SK 울산 석유화학단지 [중앙포토]

SK 울산 석유화학단지 [중앙포토]

양쪽은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소멸시효 기준이 잘못됐다고 봤다. 부과금을 부과한 것과 이에 대한 환수 처분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SK측이 수입한 중유로부터 저유황 벙커시유를 추출해 일반전기사업자에게 공급한 부분에 대한 판단이 누락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고법은 환급금 188억원 중 90억원만 환수 대상으로 조정했다. 소멸시효가 지난 46억원과 SK가 자체 생산해 제3자 등에게 판매한 열에너지 생산용으로 쓴 물량에 대한 환급금 52억원은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SK와 석유공단은 다시 대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SK는 188억원 전체를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했고, 석유공단은 환급금 전체를 돌려받아야겠다며 맞섰다.

재상고를 심리한 대법원은 환급금 46억원에 대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고법의 판단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환수금액을 산정할 때 이 부분을 제외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환급 처분 자체를 취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수 소멸시효를 판단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나머지 쟁점에 대한 재상고 주장은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의 이런 판단에 따라 사건을 다시 돌려받은 고법은 환수 대상에서 제외한 46억원을 포함해 환수 금액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SK가 석유공사에 돌려줘야 할 환급금은 고법이 이미 환급 대상으로 산정한 52억원을 제외하고 최대 132억원에 이른다. 5번의 재판을 통해 혹을 떼려던 SK측은 오히려 혹을 붙이게 된 셈이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