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직원 월 수익 5600만원"-단일 해외최대의 보이스피싱 조직 수법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용한 휴대전화 등 압수물. [사진 부산경찰청]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용한 휴대전화 등압수물. [사진 부산경찰청]

“조직원의 월 최대수익은 5600만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콜센터 1곳이 한 달에 내국인에게서 가로챈 금액만 12억원. 이런 콜센터 6개를 운영했다.”

부산경찰청, 가담자 58명 가운데 38명 검거해 38구속, 19명 수배 #2014년 2월부터 2015년 6월,필리핀과 태국에 피싱센터 6개 운영 #"신용불량자에게 마이너스통장 발급해주겠다"고 속여 거액 가로채

지금까지 검거된 해외 거점의 보이스피싱 조직 가운데 단일조직으로는 최대 규모인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실상 일망타진되면서 범죄 수법이 소상히 드러났다. 경찰이 지난 3년간 수사한 결과다.

보이스 피싱 조직이 범죄에 사용한 컴퓨터 등 증거물을 경찰이 압수하고 있다. [사진 부산경찰청]

보이스 피싱 조직이 범죄에 사용한 컴퓨터 등 증거물을 경찰이 압수하고 있다. [사진 부산경찰청]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경정 김병수)는 2014년 2월부터 2015년 5월 사이 필리핀·태국을 거점으로 내국인 상대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한 총책 A씨(39)씨 등 가담자 58명 가운데 39명을 검거해 38명을 구속하고, 해외도피 중인 10명 등 19명을 수배했다고 2일 밝혔다. 가담자 58명은 모두 해외에서 활동해 지금까지 적발된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 가운데 최대 규모로 분석된다.

범죄 기간 전체 피해 금액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부 압수한 장부를 분석한 결과 1년 3개월의 짧은 기간인데도 내국인 수천 명이 수백억 원의 돈을 빼앗긴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경찰은 일단 200명에게 2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이들을 구속했다.

A씨는 필리핀 클락, 태국 방콕의 호화 콘도를 빌려 센터당 10명 내외의 조직원을 둔 6개 콜센터를 운영했다. 노트북 27대와 전화기, 컴퓨터 등 장비도 갖췄다. 국내 신용불량자의 정보가 많이 유포된 중국에서 신용불량자 정보를 사전에 확보하고, 이어 인터넷 검색으로 국내 시중은행의 직원 정보와 전화번호 등을 확보했다. 전화하면 신용불량자의 이름과 연락처가 뜨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활용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 등 증거물을 경찰이 압수하고 있다. [사진 부산경찰청]

보이스피싱 조직이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 등 증거물을 경찰이 압수하고 있다. [사진 부산경찰청]

먼저 조직원은 신용이 낮아 대출이 힘든 신용불량자에게 전화를 걸어 “신용도를 높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주겠다”고 접근했다. 전화할 때는 신용불량자의 이름과 대출금액을 들이대며 시중은행 직원 행세를 했다.

이어 “신용등급을 올리려면 제3금융권(대부업체)의 대출을 받아 갚았다는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대부업체의 대출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대출을 상환하면 제3금융권에 위약금을 줘야 하는데, 제3금융권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위약금을 없애주겠다”며 대출금을 입금하도록 대부업체 계좌가 아닌 특정계좌(보이스피싱 계좌)를 불러줬다.

한마디로 위약금을 물지 않고 대부업체에서 일정액을 대출했다가 곧바로 상환해 신용등급을 올려 시중은행의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다고 속인 것이다. 피해자들은 시중은행의 직원 이름과 회사 전화번호를 들이대며 전화를 하는 조직원에 속아 결국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4000만원까지 대출금을 송금했다. 하지만 계좌는 대부업체가 아닌 보이스피싱 계좌였다.

조직원들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 전화응대요령과 돌발질문에 대한 답변이 포함된 매뉴얼을 활용했다. 범행 후 모니터링을 한 시중은행이 전화하면 “이런 것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그러냐”면서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경찰조사 결과 1개 보이싱피싱 센터에서 많게는 월 12억여원을 가로했다. 압수 장부를 확인한 결과 실적이 좋은 조직원은 가로챈 돈의 20~30%를 성과금으로 받았다. 한 조직원은 월 최대 56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체류비 지원금 등을 포함하면 조직원의 수익은 이 보다 더 많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국내 가담자들은 “해외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 월 300만원 이상 보장한다”는 다른 조직원들의 꾐에 빠져 가담했다. 대부분 실업자로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들이었다. 심지어 갓 돌을 지난 어린 딸을 둔 30대 여성이 딸을 가족에게 맡기고 출국해 가담하기도 했다. 이들 가담자들은 60~90일짜리 관광비자로 필리핀과 태국을 수시로 출입했다.

경찰은 필리핀 등에 2회 출장을 가서 조직의 주요 관리자를 검거하고 그동안 조직원과 가담자들을 파악해 이들이 입국할 때마다 검거해 조직의 핵심 인물 등을 모두 검거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14년 2500억원, 2015년 2400억원, 2016년 1900억원 규모로 줄었다. 경찰은 2016년 피해액이 크게 줄어든 것은 총책 A씨가 운영한 조직의 검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병수 국제범죄수사대장은 “범행 가담자들이 서로 별명을 사용하고 국내 통장 모집·인출책 등과 철저히 점조직으로 운영하는 등 마치 ‘비밀 조직’ 처럼 운영했다”며 “국가기관이나 금융기관에서 전화로 개인의 신상정보나 비밀번호를 요구할 때는 무조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