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라 쪼개고 집권하면 후유증 감당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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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선거 막바지에 주요 후보 진영의 극단적 언행이 도를 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것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 이해찬 의원의 발언이다. 그는 공주 연설에서 "극우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 다시는 이 나라를 농단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궤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궤멸'은 군사용어다. 적을 재기 불가능하게 무너뜨려 없애는 것을 뜻한다. 그는 2012년 대선 때도 문 후보의 후견인 역할을 하다가 '친노의 분열적 색채'가 너무 심하다는 여론에 밀려 당 대표직을 사임한 바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그는 페이스북에 "문재인이 집권하면 (이해찬이) 상왕이 돼 이 땅의 보수를 불태우겠다는 것이다. 섬뜩하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연상시킨다"고 썼다. 섬뜩함으로 말하면 홍 후보도 만만치 않다. 그는 자기에게 불리한 내용을 다룬 여론조사·언론사를 거론하며 "에라,이 도둑놈의 새끼들" "온갖 지랄"이라는 표현을 쓰더니 "집권하면 이 기관들을 뿌리 뽑겠다"고 협박했다. 평소 점잖은 말투의 문 후보도 유세장에서 "또 색깔론·종북몰이가 시끄러운데 이제 국민도 속지 않는다. 이놈들아"라고 외쳤다. 집권 자신감이 넘쳐 어느덧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된 것인가.

대선 일주일을 남기면 중도·부동층을 의식해 중간 수렴적인 정책 공약을 내놓기 마련인데 이번 선거는 오히려 자기 지지세력을 똘똘 뭉치게 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1강 2중의 판세가 뚜렷하다 보니 1강은 안전하고 실수 없이, 2중은 서로 상대를 제치기 위해 집토끼 잡기에 골몰하는 것이다. 실제로 문 후보 측은 선거 초기만 해도 대통합을 외치더니 최근 공약집에서 '적폐청산특별조사위 설치'를 1번 공약으로 슬그머니 끌어올렸다.

이런 식으로 선거판이 흘러가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아무리 방향을 바꾸려 해도 원한과 미움, 분열에 사로잡힌 국민을 끌고 가기 어려울 것이다. 나라를 쪼개 놓고 집권하면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새 대통령이 겪게 된다. 후보들은 얼마 남지 않은 선거 과정을 통합 쪽으로 방향을 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