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청소년에겐 관심없는 대권주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박문서한국청소년육성회 총재

박문서한국청소년육성회 총재

5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또한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청소년의 달이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관심 사각지대에 있다. 어린아이를 유괴해 살해한 조현병(추정) 청소년의 잔혹 범죄 정도가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현행 대학 진학 중심 교육으론 #청소년 미래 없다는 것 알지만 #투표권 없어 대선주자도 외면해 #구체적 개혁 과제 나오지 않아

우선 대선주자들의 주요 공약에서 청소년에 관한 약속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 후보가 저소득 초·중·고생 1인당 15만원 지급, 또는 초·중·고 자녀 1인당 10만원 지급 등을 내걸고 있지만 이는 학부모 지원책으로 봐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직접 해당되는 공약은 아니다.

반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는 어린이집 증설, 보육수당 지급, 각종 유치원 확대, 초등학생 돌봄 확대 등등 봇물을 이룬다. 청년들에 대해서도 취업 지원,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중간에 놓인 청소년만 소외되고 있는 모양새다. 가장 큰 이유는 표 때문이다. 어린아이 정책에는 부모의 표가, 청년 대책에는 본인들의 표가 따라온다. 하지만 청소년 공약은 본인들도 투표권이 거의 없고 부모표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각 선거 캠프가 판단하고 있다.

청소년 정책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적성에 맞는 교육과 맞춤형 일자리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언론 보도나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금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 절반 이상이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고 한다. 대학 진학률에 집착하는 학교는 이들을 방치하고 포기한다. 이 같은 현상은 잘못된 정책 탓이 크다. 학생들 책임이 아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청년이 잘살아야 나라가 잘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나라의 미래를 알려면 현재 청소년을 보라”는 말도 있다. 청소년을 이대로 두고 나라가 발전하길 바란다면 온당치 않다.

비록 규모는 미미하지만 현실의 문제점들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있다. 시립 서울청소년수련관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위탁받아 대안학교인 동그라미학교를 운영 중이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 20명이 정원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1년간 가르치는데, 입시 목적이 아니라 학생들의 실력에 맞게 수업을 진행한다. 국어·영어·수학 등도 눈높이에 맞춰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요리·제과·제빵·바리스타 등 취업에 요긴한 직업 교육도 병행한다. 지난해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동그라미학교를 견학한 일이 있다. 마침 수학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학생도 자거나 졸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놀라는 표정을 보았다.

매년 동그라미학교 수료식에서는 학생들이 온통 눈물바다가 된다. 교사들이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학력 수준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한 결과다. 학생들은 “동그라미학교에 오기 전에는 꿈과 희망이 없었지만 이제는 경찰관·소방관·바리스타 등 장래직업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입학을 위해 대기 중인 학생도 있을 정도로 나름 인기가 있다. 정부는 대안학교를 포함한 다양한 해법들을 마련해야 한다.

통계로는 청년실업률이 9.8%다. 43만5000명(2016년·통계청)으로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심각한 사회문제다. 취업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감한 교육 및 청소년 일자리 정책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대학진학률은 69.8%(2016년·통계청)다. 필요 이상으로 높다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다. 프랑스·스위스 등 선진국들과 같이 고등학교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전문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소년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꿔야 한다. 동시에 진학을 원하는 청소년들은 직장에 다니면서 퇴근 후 대학에서 전문 분야를 공부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면 많은 청소년이 주저하지 않고 고졸 후 취업의 길을 택할 수 있다. 기업과 대학이 산학 협약을 맺어 대학 교수가 기업에 와서 강의를 해도 좋을 것이다.

위기 청소년, 소외 청소년 등에 대한 정책 배려는 더욱 열악하다. 범법 청소년 7만6356명(2016년·경찰청), 장애 청소년 3만1103명(2016년·보건복지부), 학교폭력 피해자 2만5400명(2016년·교육부) 등도 모두 우리의 아들딸이며 소중한 자산이다. 정부·지방자치단체·청소년단체 등이 힘을 합쳐 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들에 대한 따듯한 배려와 지원이 우리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만든다. 정부 예산을 통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개인이나 기업에서 기부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하며, 청소년을 위한 봉사활동이 활성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곧 출범할 새 정부는 청소년 정책을 새롭게 정비해 주면 좋겠다. 청소년 정책은 당장 가시적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체감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청소년 정책에 대한 무관심과 빈약한 예산, 문제의 확산 및 고질화 등 악순환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청소년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지원은 미래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투자가 될 것이다.

박문서 한국청소년육성회 총재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