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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삶, 느린 생각] 후보들은 정신적 가치에 대한 소신이 있는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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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호 면

[빠른 삶, 느린 생각] 퇴계 聖學과 대선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퇴계 이황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68세때 나이 열일곱에 왕위에 오른 선조를 위해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지어 올렸다. 성학은 성인(聖人) 공부를 위한 책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성인은 모든 선비가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교문화 안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위한 학문, 또는 더 일반적으로 인간이 되는 길을 가리키는 학문이다. 그러나 퇴계의 저서는 갓 왕위에 오른 선조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성군(聖君)이 되는 데 필요한 학습서이다. 다만 유교의 보편주의는 성군의 인품을, 천재적인 특성이 아니라, 일반적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지도자가 성인일 필요는 없지만 #더 나은 사회 향한 이상 보여줘야 #차기 대통령은 물론 주변 세력도 #분명한 정책과 의무감 갖췄으면

그런데 임금이 성인이 된다면, 그것이 좋은 일이겠는가? 정치는 말할 것도 없이 세속 인간의 삶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성인의 삶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만큼, 정치인은 성인일 수가 없고, 성인이어서는 곤란하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에 성인은 탈속(脫俗)의 차원에서, 즉 세속적 삶을 넘어선 정신의 차원에서 진실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사실 ‘성학십도’는 정신 수양 또는 인격 도야(陶冶)를 위한 교습서이지, 정치 지침서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정치 지도자도 그러한 수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리학의 서문 또는 차자(箚子)에서 퇴계가 말하는 것에 의하면, 성학은 어진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그와 함께 ‘나라의 사업’을 이룩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학문이다. 성학에 강조돼 있는 것은 정신적, 도덕적 심성에 못지않게 사물에 대한 객관적 인식의 능력이다. 윤사순 교수의 번역을 인용하면, “(자신을 비워낸) 마음의 능력이 없으면 일을 앞에 당하여 놓고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이(理)의 드러남이 확실하더라도 만일 찾아서 처리하려는 생각이 없으면, 항상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마음의 능력은 주로 정신적 수양에 필요한 진리를 알아보는 능력을 말하지만, 동시에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는 능력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또는 퇴계와 같은 유교 사상가에게는 사물을 똑바로 보는 능력은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분명하게 알아보는 것에 겹치는 능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내적 수양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왕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존재여야 했다.

TV 토론만으론 지도자 능력 가늠 어려워

전통시대에 있어서 제왕의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정신적 모범만으로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이 상당히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농업 경제의 사회에서 임금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임금이든 또는 다른 통치자이든, 오늘의 정치 질서에서 정치가 맡아야 하는 일은, 조금 전에 말하였던 것처럼, 거의 모두 세간사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간사에서도 필요한 것은 여러 복합적인 능력이다. 그것은 상황에 대한 사고 능력과 정신적 가치에 대한 소신을 포함한다. 정치 지도자는 여러 세간사를 하나로 통합하여 생각하고 목표하는 바를 제도로나 정책으로나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일은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여러 가지 새로운 요인들이 발생함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만큼 더욱 상황을 총체적으로 또 유연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 능력은 목전의 일을 분명히 보고 처리할 수 있고, 또 이것을 전체적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그런데 이 힘은 궁극적으로는 무엇이 참으로 보람있는 인간의 삶인가를 가늠하는 일에 연결된다. 이것은 인간의 삶을 값지게 하는 정신적 가치에 대한 소신을 요구한다. 이 정신적 가치에 대한 소신은 다른 모든 능력을 뒷받침하는 바탕이 되고, 그것을 이끌어 가는 정열의 근원이 된다. 이렇게 보면 역점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오늘날에도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능력도 옛날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능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며칠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러한 것을 느끼게 하는 지도자를 찾을 수 있을까? 최근에 있었던 TV 토론을 두고, 언론에서 “입씨름만 있었다”는 평들이 많은 데 이것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평들이 나오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TV 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정견을 발표하는 적절한 형식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서 토론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의 바른 결론에 이르거나 적어도 자신의 의견을 재고할 기회를 갖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기의 의견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그것으로써 국민을 설득하여야 할 후보들이 토론이라는 형식의 발표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토론에서는 제기될 수도 있는 작은 문제들은 불필요한 논쟁을 낳고, 큰 주제들을 놓쳐버리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가령 군인의 봉급이 얼마가 돼야 하느냐 하는 것이 화제가 된다면, 그 자세한 내용은 행정부처에서 연구할 과제이지, 최고지도자가 정해야 할 사항은 아닐 것이다. 그것에 대한 대체적인 원칙은 정해질 수 있지만, 그 자세한 내용은 간단히 답해질 수가 없는 일일 것이다.

또는 더 나아가 그것이 참으로 절실한가 하는 것은 국가 정책의 전체적 상황에 비추어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 할 것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는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 토의에서 어떤 것이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를 검토하면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에 대한 후보들의 간단한 주장들을 비판하고 있다. 박 교수의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사드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것은 관계국 간의 복잡한 요인에 얽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북핵의 위협이 만들어내는 전체 상황 그리고 그 전체 상황 속에서 고려될 수 있는 여러 대책들과의 관계에서만 평가되고 선택될 수 있는 수단중 하나이다. 이것은 다른 정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병사들의 보수 문제를 말하였지만, 그것은 군 복무와 관련해 그 의미가 무엇이냐를 전체적으로 평가해 또 국가 예산의 균형을 고려하는 관점에서만 적절한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학교 제도, 국민 연금, 또 다른 여러 정치제도, 사회제도에 대한 너무 미세한 제안도 큰 테두리 속에서 연구할 정책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정치지도자가 정견을 발표하는 자리는 이 전체적 맥락을 밝혀주는 일이지, 작은 세부 제안 하나하나를 가지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하는 자리라고 할 수 없다.

사회적 연대 바탕으로 한 투명성·신뢰 필요

정치를 논할 때 좌냐 우냐 하는 것이 문제될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생각에서 좌우가 기본적인 측정의 틀이 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물론 그것이 정책 평가에 결정적인 척도나 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사회적 번영과 인간적 사회 질서의 실현이라는 틀에서 그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좌나 우나 한 가지 관점에서 사회문제 그리고 인간문제를 일관하여 보는 것이 이상적 해결에 이를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공산 혁명의 실험, 신자유주의의 극단적인 시장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실험의 좌절(가령 올랑드 사회당 정권의 실패 또는 베네수엘라 통합사회당의 마두로 대통령 치하에서 가속화하는 범죄, 빈곤, 식량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부딪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전체적 인식의 틀과 함께 그것을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일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여, 끊임없는 재설정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전체적 인식의 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우리 의식에 들어 있는 일반적인 문제의식의 틀로 파악되는 문제들을 상기해본다.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 논란이 되어 온 것은 사회안전망 확장의 문제이고, 소득 격차의 문제였다. 이것은 좌파적 견해에서만 중요할 것이라는 관점이 있지만,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국가와 사회질서의 안정을 위하여 필수적 조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역사적 연구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의 붕괴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보편적인 교육, 건강, 주택 혜택 등도 사회적 문제 의식의 테두리에 들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평등의 실현, 즉 고용이나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위한 정책은 경제 성장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무한한 경제 성장이 지속가능한가? 생태계에 그것을 허용할 것인가? 여기에 따른 문제들은 이미 많이 논의되어 온 바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큰 테두리 가운데에도, 이미 시사한 바와 같이, 사드 문제 그리고 남북 대결의 문제는 가장 초미의 문제이다.

이러한 걱정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들의 뒤에는 인간 심성에 관계되는 이념들이 있다. 가령 남북 관계를 생각할 때에 핵심 사항은 평화의 이상이다. 평화는 삶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이것은 중요한 물질적 조건이면서 심성의 단서이다. 이외에도 심성의 조건은 많이 있다. 현실 조건에 못지 않게 이러한 심성의 조건에 대한 의식의 확장도 우리 사회에, 또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일이다. 정치 정책들이 바르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정치가 투명하고 청렴한 인간 행위의 장이 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사회적 신뢰가 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연대감, 나아가 생명 공동체적 의식이 널리 인간 의식과 행동의 바닥에 깔려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사람들은 지도자에게서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한다. 물론 이것은 지도자 한 사람의 사유와 배려와 행동능력 준비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가 그러한 의식과 품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돕는 사람들 전체가 그러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 서두에서 말한 퇴계의 성왕(聖王)론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의 하나는 최고 통치자 주변에서 그를 보필하는 신하들의 역할이다. 오늘날에도 지도자를 돕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것을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분명한 정책을 가지고, 또 국가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성왕은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른 치자

이러한 것들을 배경으로 하여 지도자가 부상된다. 흔히 듣는 말로 지도자와 관련해 카리스마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인격적인 견인력을 말하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린 재능과 지도력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후자의 경우는 신이 내린 탁월한 지도자라는 뜻이지만, 신이 아니라도 보통 사람으로서도 조금은 특별한 신통력을 가진 지도자가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퇴계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국민을 위하여 행동하는 덕행이 법과 윤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하늘과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성왕은 그러한 치자를 말한다. 국민이 정상적으로 선출하는 최고의 정치 지도자가 반드시 현실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렇게 높은 인격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마음에 두는 지도자는 천인합일은 아니라도 적어도 주어진 조건하에서나마 더 나은 이상 사회에 근접해 갈 수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인간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지러운 정치 현실 속에서 이상을 한 번 상상해보는 것에 불과한 점임은 사실일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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