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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종교의 메시아니즘서 배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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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호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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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면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이다. 전국의 사찰들은 봉축 점등식을 갖고 부처님의 자비를 기리는 행사를 시작했다. 석가모니의 출생지는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인 히말라야 산 기슭이다. 그곳에 카필라성(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족(釋迦族)의 작은 나라가 있었고, 석가모니는 그 나라 슈도다나 왕(淨飯王)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7일에 생모 마야 부인과 사별했으나, 16세에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고 그 생활이 매우 풍족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문출유(四門出遊)의 일화와 더불어 왕자의 자리와 처자를 버리고 출가한 것이 29세, 깨달음을 얻은 다음 전국을 돌며 교화를 계속하다 80세에 입적(入籍)했다.

종교 구세주의, 정치 현실에도 적용 #대통령 자질 검증에 종교적 거울 유용 #최고의 종복 되겠다는 겸손 철저해야 #국민이 상전이요 임명권자이기 때문 #대선후보가 내놓는 꿈 현실성 따져야

사홍서원(四弘誓願)의 ‘법문무량(法門無量)’이 뜻하듯이 방대한 불교의 교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서 말할 수는 없으나, 이 아침의 논의에 필요한 관점 몇 가지는 쉽사리 얻을 수 있다. 권세 있고 부유한 왕좌와 살을 나눈 가족을 떠나 중생 가운데로 내려갔으니, 낮고 겸손한 자리에서 출발했다. 불교의 청빈사상이 여기서 멀리 있지 않다. 동시에 불교에는 수도와 정진을 통해 도(道)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선명한 꿈이 있다. 이 명료한 비전이 오늘의 불기에 이르도록 불교를 추동한 힘이다. 그런가 하면 불교의 전파와 확산은 교조를 신봉하고 그에 헌신한 제자들로 말미암았다. 그 설법의 기록과 보존 또한 잘 양육된 제자 없이는 불가능했다.

인류 역사를 가로지른 대종교들의 형상이 이러한 측면에 있어서는 모두 동일한 면모를 보인다. 기독교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올 때 태어날 처소가 없어 말구유를 빌려야 하는, 가장 낮은 출생의 방식을 선택했다. 기독교는 ‘왕’으로 온 예수가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성삼위일체의 ‘신’인 예수가 ‘인간’의 모습으로 대신 죄를 짊어지는 종교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이 있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다는 성서 속의 기사를 본뜬 세족식은, 왜 기독교가 섬김과 겸손을 바탕에 둔 종교인가를 잘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기독교의 가장 큰 모범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다.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죽기까지 인간의 죄를 대속하려한 메시아의 종교가 기독교다.

구약성경은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수 이전의 원망(願望)이 메시아 대망론이었다면, 그 이후는 천국에의 소망이다. 예수의 3년 공생애는 이 천국 비전을 가르치는 데 중점이 있다.

불경이 석가모니의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고 전승되었듯이, 성경 또한 그렇다. 사복음서를 비롯하여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을 담은 신약성경은, 그 제자들의 생명을 건 사역과 더불어 후세에 남았다. 이렇게 동서양의 문명과 사상을 대변하는 두 종교는 가장 겸허한 곳에서 가장 선명한 비전으로 그 길을 밝혔다. 그리고 절대자를 승계하는 제자들의 헌신이 그 꿈을 온 세상에 편만하게 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살펴 본 이와 같은 종교의 구세주의, 곧 메시아니즘(messianism)은 강력한 지도자를 내세우는 정치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른바 정치적 메시아니즘을 말한다. 이 도식을 적용하면 정치 지도자가 지도자답게 존중받기 위해서 어떤 품성을 갖추어야 할지 명약관화해진다. 특히 너무도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대선정국, 후보들을 정확하게 가늠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말을 달리하면 대통령의 자질과 역량을 검증하는 종교적 교훈의 거울이 매우 유용할 수 있다는 뜻이며, 대선 주자들 또한 스스로의 언행을 그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먼저 국가 최고의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은 최고의 종복(從僕)이 되겠다는 각오로 낮은 자리의 겸손에 철저해야 한다. 국민이 그 상전이요 임명권자이기 때문이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 작은 약속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대통령이어야 지속적인 신뢰를 보낼 수 있다. 마음으로부터 섬김의 자세가 없는 지도자는 오래 가지 않아 그 바닥을 드러낸다. 구두선(口頭禪)의 언사로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진실성이 더 귀중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흔쾌히 그렇다고 할 만한 역대 대통령도, 또 후보도 잘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다. 그래서 우리 현대사를 존경할 만한 인물 만들기에 실패한 역사라고 한다.

대통령 후보가 보여주어야 할 선명한 비전은 공약(公約)으로 나타난다. 중생제도나 천국 소망과 같은 공동의 꿈이 현실 속에서는 무엇일지 따져보는 일이다. 이승만의 독립된 나라, 박정희의 산업입국, 김영삼과 김대중의 민주화 실현이 각기의 시대를 관통한 꿈이었듯이 지금의 대선 주자들이 내놓는 꿈이 얼마나 명료하고 또 현실성이 있는가를 판단의 자료로 해야 마땅하다. 이제껏 다반사로 보아온, 그 공약이 공약(空約)이 되고 마는 사태를 더 이상 목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 하나, 정말 목마르게 바라기로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다음 세대의 후속 인물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이는 정파적·정권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민족적 차원의 눈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국면이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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