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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도 안 하는 책임전가를…" 특검팀, '정유라 특혜' 이인성 교수 징역 3년 구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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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들도 말단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교육자의 허물을 쓰고 제자에게 온갖 교육 농단 멍에를 덧씌우려는 피고인에게 일고의 용서도 없이 징역 3년을 선고해줄 것을 강력히 권고하는 바다.”

'범서방파' 잡은 특검보 '조폭' 언급하며 "용서 없어야"…이인성 "이대는 내 평생…학생 위할 기회 달라"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학사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인성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교수에게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업무방해 혐의로 지난 2월 구속기소된 이인성 교수.

업무방해 혐의로 지난 2월 구속기소된 이인성 교수.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9부(재판장 김수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교수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박충근 특검보는 조직폭력배 이야기를 꺼내며 구형 취지를 설명했다.

박 특검보는 “소위 ‘조폭’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보스도 살리고 자기도 살자고 말단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면서 “하물며 조폭도 그러한데 피고인은 십수년을 피고인 밑에서 궂은 일을 하며 교수 임용을 원하던 제자의 허탈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책임을 떠넘겼다”고 말했다. 박 특검보는 검사 시절 ‘범서방파’ 두목을 기소하는 등 조직폭력배 수사를 많이 해온 ‘강력통’이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박충근 특검보.

박영수 특별검사팀 박충근 특검보.

이날 법정에서는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학생들이 쓴 대자보 내용이 박 특검보의 목소리를 통해 울려퍼졌다. 박 특검보는 ‘전공과 꿈을 위해 지새운 밤이 허무하고 억울하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 자책감이 든다. 누구 잘못인지 대답해 달라’는 대자보를 읽어내려간 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총장이고 교수고 다 잘못이 아니라면서 책임 전가하기 급급하다”고 말했다. 박 특검보는 “소위 사회 지도층의 범죄자들에게 엄격해야 하는 것은 그간 온갖 혜택 누렸기 때문”이라면서 재판부에 선처 없이 형을 선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해 10월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건물의 모습.

지난해 10월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건물의 모습.

최경희 전 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 교수는 최 전 총장과 1년 동안 1465회 전화·문자 연락을 하고 최 전 총장이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자 그의 아파트에서 지내기도 했다. 특검팀은 이 교수가 최경희 전 총장의 속칭 ‘베프(베스트 프렌드)’로 알려져 있다면서 최순실씨로부터 “정유라가 학점을 받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최 전 총장이 이를 이 교수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교수는 자신이 박사학위 지도를 하고 있는 겸임교수 유모 씨를 시켜 정씨에게 학점을 주게 하고 자신의 수업에 과제를 내지 않은 정씨 대신 허위로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검팀의 구형이 끝난 뒤 이 교수의 변호인 박기주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위계나 위력으로 학점 부여를 방해한 것이 아니라 학교 방침을 전달했을 뿐이다”면서 제자에게 채임을 전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국민들은 국가대표 선수들로 인해 환호했고 그들이 국위선양을 했다고 기뻐했다. 학교에서 특기생을 선발하고 학점을 부여해 졸업을 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범죄로 생각한 국민은 아주 적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 세상이 바뀌어 국민들은 이화여대 교수들의 구속을 보며 환호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고인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학자이고 이번 사건으로 사익을 취한 것도 없다”면서 이 교수가 다시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도록 벌금형에 처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10월 이 교수의 연구실에 붙은 자보 모습.

지난해 10월 이 교수의 연구실에 붙은 자보 모습.

울면서 듣고 있던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일어나서 해 달라”는 재판장의 말에 최후진술을 했다.

이 교수는 “이제까지의 제 삶은 이대를 떠나서 존재하지 않았다. 이대를 좋아해 이대에 입학했고 22년간 이대 교수로 재직했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해 온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이대가 여대로서 존폐여부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우수 학생을 유치하게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체육 특기생을 배려하는 것이 학교를 위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경솔한 행동과 판단이 제자들까지 잘못 저지르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면서 “하지만 정유라를 알고 처음부터 개인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 평생 열정과 사랑을 바쳐 일했던 이대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한 번 학생들을 위하는 좋은 선생으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끝맺었다. 이 교수에 대한 선고는 6월 2일에 이뤄진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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