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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정치] 한나라, 서울시장 후보 밖에서도 찾는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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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김형오 인재영입위원장이 9일 한 얘기죠. 그는 5월 지방선거를 위해 "강태공(숨은 인재) 어디 없소"라고 외치며 반년 동안 외부 인사 영입을 총지휘했습니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온 서울시장 후보자 영입이 자신의 힘으론 어렵다고 느꼈답니다. 그래서 위원장 자리를 훌훌 벗어 던졌습니다.

◆ 서울시장 경선은 '박근혜 분권화 실험'의 무대=김 위원장이 공을 들인 사람은 많습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황영기 우리은행장, 벤처기업인 안철수씨, 어윤대 고려대 총장 등을 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낚기(?) 위해 만났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일제히 "노(No)"였습니다. 물론 정치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겠죠. 그러나 "경선 없이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옹립해도 모시기 힘든 '월척'들에게 '일단 입당해서 기존 후보와 경선하라'면 누가 들어오겠느냐"는 게 김 위원장의 하소연입니다. 한나라당 당헌에 따르면 서울시장 후보자는 경선으로 뽑는 게 원칙입니다. 기존 당원 표가 50%나 되는 경선에서 갓 들어온 외부 인사가 국회의원인 당내 주자를 꺾는 것은 힘들지요. 괜히 입당했다가 망신만 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영입 작업이 달랐습니다. 공천권을 거머쥔 당 대표가 경선 승리를 보장해줬죠. 그래서 이들은 '제왕적 총재'로 불렸습니다. 첫 지방선거였던 1995년의 일입니다. 서울시장 후보를 뽑는 민자당 경선 과정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대통령 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정원식 전 총리를 밀었습니다. 당내 초.재선 의원을 잔뜩 불러놓고 "경선 안 해도 될 훌륭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경선에 나섰다 패배한 이명박 서울시장은 "당시 김심(金心.김영삼씨의 뜻)에 졌다"고 불만이 컸습니다. 불공정 경선이란 얘기입니다.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이회창 총재는 "공천개혁한다"며 임진출 의원을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시켰다가 한 달 만에 전국구 의원으로 추천했습니다. 임 의원은 전국구 의원이 됐지요.

국회의원들이 '김심'이니 '창심(昌心.이회창씨의 뜻)'하는 보스 의중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였지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공천에 개입하지 않고 순수 경선을 보장하겠다는 뜻은 당 운영을 민주화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달 당 원내대표 경선 당시 김무성 의원과 이재오 의원을 놓고 박 대표는 자신의 입장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투명성이 김 위원장을 지치게 했다고 합니다.

◆ 박 대표의 중립 입장은 끝까지 이어질수 있을까요=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박 대표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명박 시장과의 대통령 후보 경쟁을 벌이는 박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지방선거에 질 경우 박 대표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측근들은 한나라당이 질 수 있다는 여론조사를 앞세워 영입의 필요성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이 시장에게도 차기 서울시장은 이겨야만 하는 선거입니다. 여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면 자신이 기껏 쌓아놓은 업적을 깎아 내릴 수 있다는 염려 때문입니다.

정운찬 총장 측은 최근 "한나라당은 물론 이명박 시장 쪽에서도 5, 6차례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털어놨다고 합니다. 이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지요. 한나라당 내 시장후보 주자들이 이 시장 지지를 받기 위해 이 시장과 가까운 사람의 집도 찾아가고 술접대에 나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장이 공개적으로 영입 작업에 뛰어들기는 어렵답니다. 드러내놓고 누구를 밀 경우 "이 시장이 불공정 경선을 만든다"는 비판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 내에선 '영입을 안 해도 이긴다'는 쪽과 '영입 안 하면 진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눠져 있어요. 비관론이 확산되면 박 대표와 이 시장이 '어느 한 사람을 영입해 후보로 밀자'고 막판 담판에 나설지 모른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엄정중립 실험은 논란의 대상이 될 겁니다.

◆ 분권화 속 어수선한 한나라당=박 대표의 분권화 실험은 후보 공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당 운영도 중립과 분권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당은 원내 대표와 역할을 나누는 '투톱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학법 파동이나 행정도시법 등 민감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생각차가 드러나 마찰이 생기곤 했습니다. 새내기 의원들의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예전에는 선배 의원들 눈치 보느라 할 말을 아끼곤 했던 초선 의원들이 의원총회 같은 데서 거침없이 당 지도부를 비판합니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변화에 대해 "당내 민주화가 이뤄진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당의 힘이 분산돼 무기력해졌다"는 우려가 교차합니다.

최상연.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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