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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때문에 문재인 찍는 당께~” 샤르르 녹은 호남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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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때문에 문재인 찍는 당께~”

시장 좌판에서 국회까지…사람 대하는 스펙트럼 다양한 게 최대 장점 아들에 대해서는 "아빠 똑 닮아 고지식하고 철학 있는 아이"

광주의 한 노인회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부인 김정숙 씨가 “문재인 안사람입니다”라고 인사하자 군중 일부에서 덕담이 이어졌다. “또 왔네”라며 반가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20일 김정숙 씨가 광주의 한 노인건강타운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20일 김정숙 씨가 광주의 한 노인건강타운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김씨는 광주의 한 노인건강타운에서 배식봉사를 진행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김성한 전 기아타이거즈 감독, 이재명 성남시장의 부인 김혜경씨 등도 함께했다.

5월 9일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김씨는 문 후보를 뽑아달라는 말보다 이 시장의 부인과 김홍걸 위원장 등을 소개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며 말을 아꼈다.

근처 성당에서 봉사하다 김씨의 얼굴을 보러 잠시 이곳에 들렀다는 성경희(58) 씨가 “난 일번(1번) 찍을 거야”라고 하자, 김씨는 그제서야 파안대소하며 “일번”이라는 말을 처음 꺼냈다.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전날 진행됐던 대선후보 토론(KBS주최)이 화제였다. 문 후보가 토론에서 과하게 지적당해 안타까웠다는 게 주된 반응이었다.

김씨를 두 번째로 본다는 박춘기(80) 씨는 “(토론에서) 다들 문 후보만 공격하니까 동정심이 들더라”며 “김씨는 더 속상했을 텐데 저렇게 밝게 인사하니 괜히 마음 쓰여 문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처럼 ‘김정숙 때문에 문재인 찍겠다’는 사람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씨는 “그간의 정성을 알아주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김정숙씨가 전라남도에 위치한 태극기마을 소안도 주민 어르신들과 대화하고 있다.

김정숙씨가 전라남도에 위치한 태극기마을 소안도 주민 어르신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추석부터 매주 1박2일 일정으로 호남을 찾았다. 올해 설까지는 광주에서, 설 이후에는 전남의 외진 섬 지역도 훑었다. 벌써 8개월째 ‘김정숙 스타일’로 ‘호남 특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문 후보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혼자라도 호남에 있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동네 목욕탕을 찾아선 ‘솔직’한 민심을 들었다. “깨벗고 보니까 좋네요”라며 호의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
김씨 측 관계자는 “시장에 좌판 깔고 앉아 있어도, 국회 앞에 서 있어도 항상 거기에 있었던 사람처럼 찰떡같이 어울린다. 사람을 대하는 스펙트럼이 다양한 게 최대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김정숙 씨의 구두. 장거리 이동을 고려해 바닥이 평평한 '플랫' 구두를 신었다.

김정숙 씨의 구두. 장거리 이동을 고려해 바닥이 평평한 '플랫' 구두를 신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면서도 그는 전화기를 손에 놓지 않았다. 중간 중간 전라도 사투리를 섞어 쓰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이동 중에도 전화하느라 바빠 보인다. 누구와 통화했나.

“미처 뵙지 못한 분께 인사드려야 한다. 호남에 대해 하나라도 더 듣고 반성하고 싶다.”

대선 후보 못지않은 강행군 중  그는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옷깃에는 작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옷에 얼룩이 묻었는데.
“오늘 새벽에 남편 주려고 전복죽을 끓이다가 묻혔다. 주부들은 알 거다. 국자에 남은 죽을 입에 털어 넣다가 가끔씩 옷에 흘리기도 한다. (웃음)정치인의 여자들은 정말 고생하는 것 같다.”

그는 손수건으로 신발을 깨끗이 닦았다. 바닥이 평평한 ‘플랫 구두’였다. 유세를 위해 걷기 편한 구두를 택했다고 한다. 차안에서도 유권자를 만날 준비를 계속했다.

-일정이 빡빡한데 구두를 신으면 힘들지 않나.
“구두는 상대에 대한 예의다. 유세할 때 웬만하면 구두를 신는 편이다. 상견례 때 운동화를 안 신듯이 국민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도 단정한 모습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김정숙 씨는 호남을 방문해 영.호남 화합에 대해 얘기했다.

김정숙 씨는 호남을 방문해 영.호남 화합에 대해 얘기했다.

이날 오후 여수의 한 노인회관을 방문한 김씨는 오전에 보였던 밝은 표정에서 사뭇 진지해진 모습으로 운을 뗐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실패해서 송구스럽다”고 강조하며 “이번 대선에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걸씨가 문 후보를 지지해줬다. 영남, 호남이 서로 힘을 합쳐 정권교체를 하고 기쁨을 나누는 나라가 되기 위해, 안사람인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정숙씨가 고 김남두 독립유공자의 며느리인 김양강 할머니에게 도다리쑥국을 대접한 뒤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정숙씨가 고 김남두 독립유공자의 며느리인 김양강 할머니에게 도다리쑥국을 대접한 뒤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제56회 전남도민체전' 개막식에 방문하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아들 준용씨 얘기를 물어봤다.

-아들을 둘러싸고 취업 특혜 의혹이 일었다.
“애를 키워보면 알 거다. 내가 알기 전에 이미 어른이 되어 있더라. 중학교 때부터 저작권을 지키는 등 제 아빠 똑 닮아 고지식하고,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아이다. 설령 문제가 있었다면 지난 정권에서 가만 뒀겠나.”

3월 20일 각자 광주일정을 마친 문재인 후보와 부인 김정숙 씨가 서울행KTX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3월 20일 각자 광주일정을 마친 문재인 후보와 부인 김정숙 씨가 서울행KTX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는 중 김씨는 전화 한통을 또 받았다. 문 후보가 계속된 강행군으로 감기 몸살이 심해졌다는 얘기였다.

당초 그는 여수에서 광주로 이동해 하룻밤을 묵으려고 했다. 하지만 계획을 취소하고 곧바로 문 후보가 있는 서울로 이동하기로 했다.

도착 예상 시각이 밤 11시 경이었다. 다음날 목포로 다시 내려와야한다. 광주에서 머무는 게 효율적일 테지만 한두 시간이라도 남편 곁을 지키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몇시간 뒤 내려오기로 했다.

“남편에게 간단한 죽을 챙겨주고 돌아와 목포를 다시 찾겠다”며 차에 몸을 싣는 그에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많은 분들이 문 후보를 지지해주고 계시다. 그분들 마음을 생각하면 더 책임감을 갖고 남편을 챙기게 된다”고 답했다.

-이따 서울에서 문 후보를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나.
“어느 위치에 있더라도 변하지 않고 늘 국민과 소통하는 걸 잊지 말아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차에 올라탄 직후에도 그는 창문을 내려 남은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광주‧순천‧여수=김포그니 기자pogn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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